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 학살 장면. 바다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 출처='더 코브'
일본 다이지의 돌고래 학살 장면. 바다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 출처='더 코브'
[ 김봉구 기자 ] 최근 관람한 영화 가운데 인상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더 코브(The Cove)’다. 2010년 아카데미상 수상작인데 뒤늦게 봤다.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단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의 어촌마을 다이지(太地)를 배경으로 했다.

“바로 여기, 이 작은 마을에 엄청난 비밀이 있죠. 이곳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영화 도입부, 서양인 몇이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 ‘잠입’한다. 이들은 생태활동가다. 돌고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이지에 왔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수중 카메라와 잠복 카메라에 포착된 다이지의 풍경. 배들이 일렬로 늘어선 뒤 일제히 철봉을 두드리며 돌진한다. 그 앞으로 돌고래 수십 마리가 파닥파닥 물 위로 뛰어오르며 헤엄친다. 얼핏 장관처럼 보이는 이 장면의 실상은 ‘돌고래 몰이’다.

고주파로 유명한 돌고래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수중음향으로 의사소통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속성을 훤히 아는 어부들이다. 돌고래는 재주를 부리는 게 아니다. 날카로운 쇳소리에 괴로워하며 달아나고 있었다. 렌즈 안에서, 헤드폰 속에서, 돌고래는 필사적이다. 비명 속에 아기 돌고래가 목청껏 어미를 찾는 소리도 섞였다.

화면 전체를 채우는 핏빛 바다가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마을 주민들이 한 몸이 되어 가지도 보지도 못하게 막았던 곳, 그 비밀의 만(The Cove)이 실체를 드러냈다. 좁은 만으로 몰이당한 돌고래들은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학살당한다.

찌르고 쑤시는 와중에 어부들은 돌고래를 선별한다. 어리고 예쁜 것들은 돌고래쇼를 하는 수족관에 보낼 양으로 골라낸다. 여기에 끼지 못한 돌고래는 도륙해 식용 고기로 유통시킨다. 그러면서 어부들은 항변한다, “이건 전통이다”라고.

그렇지 않다. 전통이 아니라 장사다. 돈이 되니까 하는 것이다. 돈이 안 된다면 대규모 학살을 벌일 이유도, 이렇게까지 은밀하고 잔인해질 필요도 없다.

“돌고래의 미소는 인간의 착각일 뿐이죠. 그들은 항상 행복하다는 환상을 만들지요.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절대 갇혀서는 살 수 없어요.” 영화의 주연 격인 동물보호운동가 릭 오배리의 설명이다.

울산에서 돌고래가 죽었다. 지난 9일 마리당 1억 원씩에 수입한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닷새째인 13일 폐사했다.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 울산 남구청이 돌고래를 사들인 곳이, 바로 다이지다. “최고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한다. 생태보호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돌고래에 대한 최고의 연대는 ‘불매’다.

조련사 출신으로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돌고래 보호에 앞장선 릭 오배리는 영화 말미에서 한층 주름이 깊어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전세계가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안다면 중지시킬 수 있을 거예요. 모두가 몰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알잖아요. 우리가 고칠 수 없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p.s. 다이지의 참상을 폭로한 릭 오배리는 지난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일본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영상 출처=네이버 영화 '더 코브'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