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정치바람 타는 과학기술에는 미래가 없다
최근 정국 혼란으로 부각되고 있지 않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기술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이슈다. 여기에는 국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과학기술계의 교수, 이른바 ‘폴리페서’에 대한 논란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은 국가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여서 국가마다 예산을 투자하며 소중히 관리한다. 다만 고도의 전문지식을 전제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식견을 갖춘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정책 수립과 집행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제가 튼튼한 나라일수록 과학기술인의 정치참여 범위가 넓다. 우리나라도 1960~1970년대 산업경제를 일으키고 이후 수출 경제를 성공시킨 산업부흥정책에 과학기술인이 대거 참여했고 긍정적인 성과도 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책 유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비가 크게 증가했다. 2016년에는 그 규모가 19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5%에 달했다. 투자규모로는 세계 5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율로는 세계 1위다. 정부도 그동안 연구개발 성과가 성공적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몇몇 지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자평해왔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연구개발 경쟁력 순위는 2009년 11위에서 2015년 19위로 떨어졌다. 지난 10월 기술경영경제학회 설문조사에서는 70%의 응답자가 정부 교체 때마다 과학기술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자연과학 분야에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일본을 보자. 일본은 전쟁 등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과학기술분야는 우선적으로 보호해왔다. 특히 내수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첨단 과학기술 연구환경을 개선하고 연구지원비를 확대해왔다. ‘잃어버린 20년’의 불황 속에서도 최첨단 기술만큼은 세계적 강국 지위를 지키고 있는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위치에 머물러 왔다. 정부가 연구사업 성과를 수치화해 과시하는 경우도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부터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기획을 관장하는 부처와 위원회, 기구가 여럿 작동하고 있다. 대선 캠페인에 참여한 과학기술인들에게 특별한 직위가 부여됐고, 그들 또는 그들의 소속기관에 수백억, 수천억원의 연구사업과제가 할애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급 관료에게 개별 보고되거나 방문이 이뤄진 연구와 기술 사업에도 엄청난 규모의 국책연구개발사업이 주어졌다. 소위 권력에 가까운 일부 과학기술인은 실질적인 중간평가 없이 10년을 지속하는 거대 국책 연구사업들을 가져갔다.

국가의 연구개발사업을 유치하는 데 고위 관료나 지역 정치인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과학기술계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니 연구비 확보를 위해 정치권으로 달려가고 연구사업 유치에 힘쓸 수 있는 자리로 자기 사람을 보내려는 행태를 어찌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이러다 보니 국가사업연구비의 편중현상은 심각하다. 2015년 기준 4만여명의 연구자 중 26%만이 국가연구사업비를 받는다고 한다. 경기침체로 산업체 연구비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74%에 달하는 연구자들은 연구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진 연구자들에게 한국은 ‘연구비 사막’에 놓여 있는 것과 같다. 이는 과학기술의 저변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연구비 지원’ 등 개인적인 명예와 사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정부지원 연구개발사업은 국민이 위탁해 수행하는 사업이며, 산업체가 지원하는 기술개발사업은 산업체 나아가 국가 경제를 위해 위탁된 임무라는 마음가짐부터 다져야 한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