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돈을 아무리 풀어도 유럽 기업들이 좀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ECB는 지난 6월 이후 443억유로(약 55조원)를 들여 회사채를 사들였다. 이로 인해 금리가 떨어졌고 회사채 발행은 급증했다.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비금융회사 선순위채권 평균 수익률은 연 1.1%다. 지난 3월의 1.4%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ECB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이 시작된 6월8일 이후 유럽의 투자등급 회사가 발행한 유로화 표시 회사채는 1162억유로 규모로 1999년 유로화 발행 후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회사채 매입을 통해 ECB가 의도한 경기 부양이라는 목표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심지어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는 데 쓰지도 않았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S&P500에 등재된 미국 회사들은 현금의 25%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지만 스톡스유럽600에 포함된 유럽 기업들은 단지 5%만 쓰는 데 그쳤다.

유럽 기업들은 돈을 그저 은행에 넣어뒀다. 유로존 비금융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총 3150억달러로, 지난 1년 동안 지출한 비용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미국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지출 규모에 비해 430억달러 적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ECB가 기준금리(예치금 기준)를 마이너스로 유지하는 탓에 은행 예금금리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예금으로 받는 이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인수합병(M&A)을 한 것도 아니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유럽 기업의 M&A 규모도 전년 동기 대비 28% 쪼그라들었다.

ECB가 회사채를 사준 스페인 통신사 셀넥스텔레콤의 이사르드 세라 재무부문장은 “ECB의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 때문에 우리가 M&A를 더 많이 하진 않았다”며 “좋은 기회가 있다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달금리가 아무리 싸다 해도 투자 기회가 마땅치 않은 것을 해결해주진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