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정 자이노 대표(오른쪽)와 천병우 중소기업진흥공단 뉴욕사무소장은 최근 한국 기업의 통합 수출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라이언 정 자이노 대표(오른쪽)와 천병우 중소기업진흥공단 뉴욕사무소장은 최근 한국 기업의 통합 수출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처음에는 쇼핑몰에 투자해 임대료를 받으며 편하게 살 생각이었다. 2002년 미국 몬스터닷컴에서 퇴사하면서 받은 스톡옵션으로 평생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평생 몸담아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직접 회사를 세워 다시 승부를 보기로 했죠.”

회사 이름은 자이노(Xinno)로 정했다. 끊임없는 혁신을 뜻한다고 라이언 정(한국명 정현덕)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1994년 삼성전자 인터넷사업부 개발팀장으로 근무했다. IT교육시스템인 ‘스마트 스쿨’ 프로젝트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대법원 원격 화상재판 시스템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자이노는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다.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해켄색에 설립됐다. 자이노의 ‘원 컨트롤 시스템’은 제품 마케팅부터 판매, 배송, 대금결제까지 전 과정을 한번에 처리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한국 중소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통로로 만들겠다는 게 정 대표의 목표다.

그는 “수출도 플랫폼 경쟁 시대”라며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의 라쿠텐, 대만의 뉴에그 등 이미 각국이 전략적인 ‘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원 컨트롤 시스템을 활용하면 국내 중소기업은 미국에 별도 지사나 물류창고를 두지 않고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확인해 제품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마케팅과 대금 회수는 자이노가 대행한다. 자이노의 시스템은 아마존과 이베이 등 대형 전자상거래업체와 연동된다. 별도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자동으로 판매업체로 등록된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미국 시장을 뚫으려면 전시회에 참가해 바이어를 면담하거나 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대형 벤더를 쫓아다녀야 했다. 어렵게 주문을 따내더라도 막대한 물량을 공급해야 하고, 자칫 클레임이라도 걸리면 전량 반품 처리되면서 회사가 망하는 위험도 떠안아야 했다.

정 대표는 “미국 유통채널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국 중소기업에도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그동안 막대한 비용 부담과 마케팅 노하우 부족으로 엄두를 못 내던 회사들도 미국에서 승부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관건은 마케팅 능력이다. 자이노는 자체 보유한 ‘검색엔진 최적화(SEO)’ 기술을 통해 타깃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는 “구글이나 아마존이 설정한 알고리즘에 맞춰 온라인 노출 빈도를 높이고, 검색순위 상단에 올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이노는 지난달 20개 한국 중소기업과 수출대행 계약을 맺었다. 제품 경쟁력은 있지만 단가가 비싸고 마케팅 여력이 없어 미국 시장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회사들이다. 정 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미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직접 골랐다. 주로 가정과 사무실 인테리어 관련 아이디어 제품이다.

정 대표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서 연말과 연초 쇼핑시즌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며 “궤도에 올라서면 1000만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자이노는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과도 업무협약을 맺고 20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한국 상품 온라인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천병우 중소기업진흥공단 뉴욕사무소장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허브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과거 수십년간 해온 수출 방식에서 벗어나는 게 한국 기업이 살 길”이라며 “한국 기업의 아이디어 상품이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먹히는지 길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