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삶 속 어디에나 이야기는 있다네"…'의학계 시인'의 발자취
지난해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별칭은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어줬다. 그는 평생에 걸쳐 환자들의 임상 사례를 문학·철학·심리학·과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기록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깨어남》 등의 저서는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인간미 넘치는 필치와 전문적 의학 지식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쓰는 재능과 유머 감각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의 마지막 책인 자서전이 번역됐다. 세상을 떠나기 약 4개월 전인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온 더 무브》다. 색스는 뛰어난 신경과 전문의이자 문인이었지만, 동시에 동성애자이자 마약중독자로 굴곡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는 환자의 삶을 들여다볼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삶도 따스한 시선으로 돌아봤다.

가족과 환자, 동료와 애인 등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겼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적었다. 14세부터 썼던 1000권의 기록이 토대가 됐다. 500여쪽에 달하지만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매력이 색스다운 책이다.

색스는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 자처했다. 평생에 걸쳐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편두통》 원고를 넘기고 난 뒤의 기분을 “어떤 가치를 지닌, 실질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어디에나 ‘이야기’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 능력, 자의식, 자전기억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통섭’의 가치를 일깨운 의학계 ‘거인’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는 책이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