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학습지원법 반드시 통과돼야
‘산업현장 일·학습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일·학습지원법)’은 학습근로자로 취업한 청년들이 기업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뒤 최종 평가에 합격하면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 고용되는 과정인 ‘일·학습병행제’와 관련된 법안이다. 2014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일·학습병행제는 ‘한국형 도제제도’로 불리며 제조업계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정부 쪽에선 청년실업 문제 해결 방안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일·학습지원법은 2014년 입법예고 뒤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오는 8일 종료될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세계 15~24세 연령대 젊은이 중 12.6%인 7억3400만여명이 실업 상태다. 유럽연합(EU)은 2014년 역내 청년실업률이 17.5%에 달했다. 금융위기를 혹독히 겪고 있는 그리스는 청년실업률이 60%에 육박한다.

ILO에선 스위스와 독일을 예로 들며 “각국이 도제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스위스와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10% 미만이다. 최근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스위스직업능력개발원(SFIVET) 필리프 그네기 원장은 “스위스의 청년실업률이 낮은 이유는 도제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5년 11월 말 현재 5600여개 국내 기업에서 1만700여명의 학습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1만개 기업에서 7만명의 학습근로자가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학습병행제는 한국형 도제식 직업학교와 특성화고교, 전문대와 4년제 대학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장기현장실습형 일·학습병행제를 시행 중인 4년제 대학 13곳은 취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학 교육을 바꾸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년간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한 많은 기업을 방문했다. 현장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기업 내부에서 체계 없이 진행되던 신입 직원 교육을 이 제도를 통해 체계화할 수 있고, 개별 기업에 특화한 핵심기술을 전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수인력을 직접 육성하고, 중소기업이 겪는 만성적 구인난을 해소해 매출 신장과 이직률 감소를 함께 달성한 사례도 있다. 금형제조사 아진산업은 일·학습병행제를 시작한 후 매출이 50% 늘었고, 이직률은 260% 하락했다. 정밀기계부품사 거산정밀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전수하던 핵심기술을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내국인 학습근로자들이 배우도록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일·학습병행제 참여 기업과 학습근로자들은 일·학습지원법이 아직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관련법이 없으면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 것인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학습근로자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청년들이다. 자기 진로를 위해 새로운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자격증을 받는다. 일·학습지원법이 제정돼야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한 학습근로자가 취득한 각종 자격증이 국가자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실무능력에 기반한 학습근로자의 자격이 학위와 동등하게 노동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 진학만을 원하기보다, 취업을 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젊은이가 많아질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높은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대졸자의 실업문제와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일·학습지원법은 반드시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