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시내에 살며 도심 농장인 ‘바이스 요그레갓 농업공원’으로 출퇴근하는 전업 농부 라이몬 로다가 관리동 건물 옥상에서 밭과 농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르셀로나=문혜정
바르셀로나 시내에 살며 도심 농장인 ‘바이스 요그레갓 농업공원’으로 출퇴근하는 전업 농부 라이몬 로다가 관리동 건물 옥상에서 밭과 농지를 보여주고 있다. 바르셀로나=문혜정
스페인 카탈루냐의 주도(州都)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5㎞ 정도 이동하면 ‘바이스 요브레갓 농업공원(parc agrari del Baix Llobregat)’에 도착한다. 도심과 가까이 자리잡은 이 협동농장은 지명이자 강 이름인 요브레갓에서 명칭을 따왔다. 밭 뒤편으로 도심 속 건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1970년대 후반 바르셀로나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일대 농지가 줄고 농민들이 밀려나자 주정부와 농민들은 1976년 법을 제정해 도심 가까이에 농업지대를 보존하기로 합의했다. 오랜 협의와 준비 끝에 1998년 농업조합이 공식 탄생하면서 바이스 요브레갓 농업공원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도심 팜(farm)’이 됐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산책을 하거나 요리 강습을 듣는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곳은 농부들의 일터다. 약 3000㏊(3000만㎡) 부지에서 약 250개 영농법인이 500여개의 농장을 운영한다. 땅 주인은 각 영농법인(개인)이며 이들은 농지를 사고팔거나 일부를 떼어 다른 농부에게 빌려준다. 단, 농업 이외의 다른 용도로 땅을 사용할 순 없다. 주로 농장들은 아티초크 자두 체리 복숭아 등 각종 채소와 과일, 닭고기를 생산해 바르셀로나 등 가까운 도시지역에 판매한다.

농산물의 생산·유통 혁신 가져온 스페인의 도시농업
농업공원의 행정관리 총책임자이자 농부인 라이몬 로다는 “도심농장은 대도시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그는 마치 직장에 출근하듯 아침이면 농사를 지으러 온다. 대신 아내와 아이들은 도시에서 직장과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땅(농지) 가격이 비싸지만 대도시와 인접해 수확물을 판매하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농축산품의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푸드’를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에겐 매력적이다.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멀지 않은 메르카바르나(Mercabarna)는 하루 평균 2만6000여명이 찾는 초대형 농축수산물 도매시장이다. 1971년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주정부, 바르셀로나 시정부가 공동 설립해 운영 중이다. 농부나 상인들은 시장 등록비와 점포 임차료 등을 내고 농축산물을 판매한다. 주 고객은 각 지역에서 영업하는 동네 과일·생선가게, 정육점 사장들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지방마다 지역색이 강하고 신선한 지역 산물을 선호한다. 고기는 동네 정육점에서, 과일은 과일가게에서, 채소는 채소 전문가게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영세 상인들도 더 좋은 품질의 농축산물을 구비해 단골손님을 관리한다. 도심팜과 지역 소규모 상점들의 공생 관계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이상적인 구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6년 이상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스페인에선 농축산물 소비 패턴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2007년 8%대의 실업률이 20%를 상회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진 지금 도심 농장과 영세 상인은 모두 어려움에 직면했다.

1990년대 초 1㏊(1만㎡)당 약 60만크로나(현재 화폐가치로 8353만원)에 달하던 바이스 요브레갓 농업공원의 농지는 현재 시세가 15만크로나(약 2088만원)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고 로다는 설명했다. 화폐가치 변화를 감안하면 땅값 하락폭은 더 크다.

농축산물은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구매하는 게 당연시되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주로 공산품을 사는 곳으로 인식하던 메르카도나(Mercadona)와 디아(Dia), 리들(Lidl)과 같은 대형마트 및 창고형 유통점에는 조금이라도 싼 먹거리를 구입하는 고객들이 점차 몰리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가 농축산물을 포함한 여러 상품에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PB상품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스페인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한국 동포 사라박 씨(40)는 “대형마트에서 과일이나 고기를 사면 왜 사느냐고 의아하게 묻던 스페인 사람들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며 “그만큼 동네 상점들도 매출이 줄거나 망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