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일반병원(의료법인)도 자회사를 세워 부대(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시행 1년이 넘도록 실적이 전무(全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설립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의료 영리화 반대’ 주장을 앞세운 야당과 시민단체의 저항으로 부대사업 허용 범위가 처음 계획보다 크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8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정부가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한 뒤 부대사업을 위해 자회사를 세운 곳은 전체 884개 의료법인 중 참예원의료재단과 혜원의료재단 두 곳뿐이다. 두 의료법인도 자회사를 통한 사업은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법인 외에 자회사 설립을 통해 부대사업을 하려고 준비 중인 의료법인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규제를 풀어 투자개방형 병원의 초보적 성공 사례를 내놓겠다는 게 자회사를 통한 부대사업 허용의 취지였다”며 “그러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규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의료재단연합회 관계자는 “자회사 설립 허가 조건이 여덟 가지에 달하는 데다 애초 병원들이 수익사업으로 관심을 뒀던 장례식장과 화장품·의약품 제조 판매 등은 허용 대상에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의료법인은 순이익의 20%까지만 자회사에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제도 병원의 자회사 설립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자회사를 설립하려는 병원의 자본 조달 여력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쪽 규제완화…첫발도 못뗀 병원 자회사
정부가 지난해 8월 병원(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를 허용한 데는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문제를 우회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병원을 대형화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의 투자개방형 병원은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로 10년째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당장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병원이 자회사를 설립해 일부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려고 했다.

하지만 병원 자회사를 통한 영리사업은 허용 1년2개월이 넘도록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쪽짜리 규제개혁’ 탓이다. 형식적인 규제를 완화하면서 여러 제약 조건을 걸어 놓았다. 우선 자회사 설립 허가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료재단연합회 관계자는 “자회사 설립 요건이 의료법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 설립을 허가받으려면 외부 감사 및 결산서류 공시 등 여덟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반면 자회사를 통해 할 수 있는 사업은 세 가지뿐이다. 장애인 보조기구 제조업과 의료관광업, 의료기기 연구개발 등이다. 정부는 애초 헬스케어나 제약, 건강기능식품 판매업 등도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통해 할 수 있게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의료 영리화’ 논란에 휩쓸리면서 병원 자회사가 할 수 있는 사업 대상이 크게 축소됐다. 병원들이 관심을 보였던 건강기능식품과 의료기기 제조업은 병원이 환자들에게 강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지됐다. 장례식장, 주차장, 산후조리원 등 기존 의료법인의 부대사업도 자회사를 통해서는 안 된다고 제한했다.

의료법인 순이익의 80% 이상을 공익 목적에 써야 한다는 재투자 조항도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의료법인 대부분이 200병상 이하의 중소 병원으로 연간 순이익이 10억원 미만”이라며 “이익금의 20%(2억원)만으로는 영리사업을 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