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상선 어디로… > 현대그룹이 채권단으로부터 특단의 자구안 제출을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본사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현대상선 어디로… > 현대그룹이 채권단으로부터 특단의 자구안 제출을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본사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와 산업은행이 현대그룹에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한 것은 해운업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 내년 이후 현대상선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8월 정부가 내년 회사채 신속인수제 대상에서 공모 회사채를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도 현대상선의 활동 반경을 옥죄는 요인이다. 내년 7월까지 만기도래하는 현대상선 회사채 5400억원 중 공모채가 36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은 현대그룹이 제시할 자구안을 크게 두 가지로 예상하고 있다. 첫째는 현대상선 유상증자와 현대증권 매각 등을 통해 빚을 갚으면서 업황 개선을 기다리는 방법이다. 그룹 지주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는 부채비율(115%)이 낮고 매출(2014년 1조3056억원) 대비 납입자본금(981억원) 비율이 낮아 증자 또는 금융권 차입 등으로 상당한 자금을 조달, 현대상선을 지원할 수 있다.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서도 최소 2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산업은행 "현대상선 추가 자금지원 불가"… 현대그룹 '매각' 승부수 꺼낼까
하지만 이런 방안은 내년 현대상선이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내년에도 적자를 내면 추가 자구안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그룹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무진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아예 통째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경우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자회사인 현대증권과 현대아산을 그룹에 남겨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에 투입할 현금으로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지분을 사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증권의 경우 연간 2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내는 그룹 캐시카우라는 측면에서, 현대아산은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와 남편(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든다는 측면에서 각각 잔류 명분을 고려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상선 매각 안은 당초 ‘플랜B’(비상 대응책) 정도로 거론됐지만 올 들어 해운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정부가 해운업 구조 재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금융권에서도 해운업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 현대상선을 그룹에서 떼어내는 게 현대그룹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대상선을 인수할 기업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국내 업계 1위 한진해운을 상대로 의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한진해운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로부터 합병에 대한 검토요청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인수합병(M&A)으로 정부 지원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현대글로비스를 거느리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0년대 초 지금과 같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상선으로부터 자동차운반선 사업을 13억달러(1조5000억원)에 사들인 바 있다.

좌동욱/김보라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