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옥스퍼드 사전 오른 '쩍벌남'
옥스퍼드영어사전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 1884년 편찬작업을 시작해 1928년 표준판을 완성했는데 참여한 학자만 1500여명이었다. 그동안 20여차례 개정 증보판을 냈지만 1997년 이후엔 오프라인 제작을 멈춘 상태다. 2000년 시작한 옥스퍼드온라인사전이 명맥을 잇고 있다.

옥스퍼드온라인사전은 대신 디지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권위를 높여가고 있다. 매분기 새로운 단어들을 등재하며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이미지를 키워가고 있다. 최근에도 세계인들이 쓰는 속어 1000개를 새롭게 올렸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등 이미 언론에서 자리잡은 단어들이 새롭게 올랐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힘을 절감하게 할 정도로 신조어가 눈에 많이 띈다.

맨스프레딩(manspreading)이란 단어를 보자. ‘남자들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서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앉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런 남자를 뜻하는 우리 네티즌들의 속어 ‘쩍벌남’의 영어식 표현인 것이다. 누군가가 적절하게 이름 붙였고 그것이 수용, 전파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 가치를 갖게 된 것이다. 포켓다이얼(pocket dial)은 주머니에, 버트다이얼(butt dial)은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잘못 눌려 전화가 걸리는 것을 뜻한다. 털 많은 아기라는 뜻의 ‘퍼 베이비(fur baby)’는 반려동물에 붙여진 새로운 애칭이다.

짧고 빠른 메시지 전달이 필요한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면서 말은 점점 짧아지고 축약된다. 편한 사이에는 오케이(OK)라고 정확하게 얘기하는 대신에 간단히 ‘음케이(mkay)’라고 한다. ‘정말로’라는 뜻의 ‘리얼리(really)’는 간단하게 ‘릴리(rly)’로 변했다. 행그리(hangry)는 배고프다는 뜻의 헝그리가 화난다는 앵그리와 만나 ‘배가 고파서 화가 난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인기 TV시리즈 맥가이버(MacGyver)도 동사로 쓰이는 용례가 사전에 올랐다. 무엇이든 아주 창의적인 방법으로 고치거나 고안하는 것을 뜻한다.

시대상을 반영한 단어 가운데 눈에 띄는 건 믹스(Mx)다. 미스터는 남자, 미시즈나 미즈는 여자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지만, 믹스는 자신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이다. 성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단다. 쩍벌남, 된장녀, 지름신, 호갱 같은 속어들이 우리말 사전을 장식할 날도 머잖은 것 같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