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야당(野黨)의 길
극우로 치닫는 아베 신조 정권의 일본을 생각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야당이 지리멸렬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보법제 강행 처리를 계기로 “아베 정치 용서하지 않겠다”고 민심이 들끓고 있지만 과연 아베 총리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지 못하는 양당제 정당국가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망한지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강건한 야당이 없는 민주주의는 부패와 변질로 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최근 일본의 행로가 우리에게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타산지석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 야당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정부 여당의 실정이 거듭될 때마다 앞장서 비난과 공격을 퍼부었지만 오히려 야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에서 거듭 패배하고, 틈만 나면 서로 막말과 쌈박질이나 일삼는, 그런데도 리더는 늘 멋쩍게 뒷수습 장면에나 나타나는 정당, 이런 정당을 기특해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출범한 새정치연합의 혁신위원회가 야당을 되살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당내 조직개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수 증원안 등 연이어 개혁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절박한 물갈이 필요성 때문이라고 하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계파 간 갈등과 반목만 더 악화되는 조짐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어느 누구도 야당이 과연 어떤 야당이 되려고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야당이 저지른 과오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뜯어고쳐 국민이 바라는 야당으로 거듭나려 하는지 보고 듣고 싶어 한다.

지금 야당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다. 야당이 유권자들의 질시를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건강하고 믿음직한 수권정당으로서 야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 사상이나 성향이 다양성을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정당이 어떤 야당인지, 뭐하자는 정치세력인지 좀 더 분명히 납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과 질타, 거부 말고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대안적 정치권력으로서 야당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중구난방의 독설과 막말들은 이미 품위나 질서의 수준을 넘어서 정체성 위기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이 바라는 야당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새정치연합은 노농 프롤레타리아 계급정당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저소득층이나 영세민, 농어촌·도시빈민뿐 아니라 중산층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그런 목표를 여당보다 더 잘 실천할 수 있는 전략과 우월한 역량을 실증해 보여야 한다. 혁신위가 가장 먼저 착수했어야 하는 일은 국민과 함께 야당의 참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정강과 정책들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묻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당을 혁신한다면서 당내 조직을 바꾸고 여당의 호응 없인 불가능한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운 데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 텐데 정작 국민이 바라는 건강하고 강력한 대안을 가진 야당상, 정체성 문제에 대한 해법도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우리는 강건하고 대안을 가진 야당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단순하다. 나라가 경제·복지·생활수준 등에서 지속 가능하게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고, 환경과 생태계, 문화와 예술, 공동체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야당은 이런 기대와 요구를 실현시키는 데 정부 여당보다 더 나은 미래지향적·혁신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의 혁신이 놓쳐서는 안될 또 다른 길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