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반도체 위기, 아직 아니라는 정부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은 세계 3위 메모리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지난 15일 제안했다. 만약 성사된다면 한국 메모리반도체업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정부와 반도체협회에 대응방안 등에 대해 문의했다. 협회 관계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미국이 산업보안 문제로 마이크론을 중국에 팔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의 논의는 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기자가 이 같은 분위기를 업계에 전하자 “너무 한가한 반응”이라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일단 미국이 마이크론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어선 안된다는 설명이다. 한 반도체업체 사장은 “마이크론은 기술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는데도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며 “업계에서는 조만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됐다”고 전했다.

마이크론 인수가 불발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메모리산업에 의지를 갖고 있는 한 ‘위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D램은 제조에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낸드플래시는 장비만 잘 갖춰도 수년 내 한국의 70%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돈만 쏟아부으면 단기간 내에 한국 업체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강하게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자 우리 정부 일각에서도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올해 수출을 늘리기도 벅찬데 4~5년 뒤 걱정을 왜 벌써 하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을 도와주자는 거냐”는 식의 반대에 부딪쳐 대응방안 논의가 무산됐다고 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20년 전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세계 반도체업체 10위 안에는 일본 기업이 NEC 등 5개가 있었다. 지금은 도시바(7위), 르네사스(10위) 둘뿐이다. 일본 업체의 빈자리는 한국 업체와 퀄컴 등 모바일 시대를 선도한 기업들이 차지했다. 앞으로 20년 뒤 세계 10위 반도체업체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사라지고 중국 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찔하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