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주얼리 융합하니 '스페셜 원' 됐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6)트리젠코 방동규 디자인팀 과장
방동규씨(사진)에게 모교는 애정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기계공학과로 입학했으나 군 전역 후 복학하니 시계주얼리학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여러 형상을 조합해 시계디자인을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연구한 내용을 포럼에서 발표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학과 조선형 교수와 함께 진행한 한국형 무브먼트 연구는 로만손 입사 계기가 됐다. 졸업 뒤에도 학교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현업에서 실무를 하면서 부족함을 느낀 그는 학교로 돌아왔다. 애프터서비스(AS) 교육 격인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2013년부터는 실무 경력을 인정받아 겸임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를 위해 찾은 경기도 성남의 동서울대 학과 사무실에서 만난 방씨는 인터뷰 내내 ‘유일한 학과’임을 강조했다. 세분화, 전문화된 주문식 교육을 학과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말끝마다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 언제부터 이쪽에 관심을 가졌나.

“대학 때였다. 학과에서 캐드(CAD: 컴퓨터이용설계)를 하면서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매년 산학 포럼도 열렸다. 시계주얼리 업체들이 많이 참여했다. 기업이 요구하는 디자인은 어떤 건지 학생들이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에 교수님과 같이 논문 연구도 하고 포럼에서 발표도 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 어떤 점에서 재미를 느꼈는지.

“시계는 사람과 닮았다. 시계의 얼굴 격인 다이얼이 있고 시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무브먼트(동력장치)가 있다. 당시엔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잘 안 돼 있었다. 시계 형상과 디자인을 일종의 샘플 형태로 만들었다. 거기에 다이얼, 핸즈(시계바늘), 밴드(시계줄) 등 여러 요소를 조합해 디자인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계디자인이 나온다. 작업이 힘들기보다는 그 결과로 이런저런 디자인이 나오는 게 참 재미있더라.”

/ 트리젠코 제공
/ 트리젠코 제공
- 전공이 시계주얼리다. 확실하게 특화됐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유일한 학과다. 4년제, 전문대 통틀어 시계주얼리학과는 동서울대밖에 없다. 시계와 주얼리는 연관성이 많다. 가공 방법이나 디자인 프로세스가 유사하다. 두 분야를 같이 배우면 좋다. 실질적으로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시계에도 스톤 세공이 들어가니까.

사실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땐 기계공학과였다. 넓고 평범하게 배우는 학과였는데 시계주얼리 쪽에만 집중하기로 한 거다. 학과가 변화하면서 많이 노력했다. 2년제 졸업 후 입사하니 아무래도 4년제 졸업생과 차이가 있더라. 그런 점을 감안해 학과가 3~4학년 전공심화과정을 만들었다. 회사 다니면서 심화과정을 이수해 학사학위도 받았다.”

- 로만손에 입사하면서 일을 시작했다고.

“졸업하고 2006년 말에 로만손 연구소로 입사했다. 학교 때 학과 조선형 교수님을 도와 한국형 무브먼트 개발 연구과제를 수행한 게 계기가 됐다. 연구과제 연장선상에서 무브먼트 개발 업무를 맡았다. 2년 뒤엔 디자인팀으로 발령 받았고. 연구 파트에서 디자인 파트로 가는 건 드문 케이스다. 디자인팀에선 시계 케이스 샘플 개발을 새로 맡았다. 아무래도 일반 디자이너보다는 시계 개발까지 내용을 아는 편이라 그런 인사가 난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 유명 브랜드인데 이직한 이유는 뭔가.

“조직에 윗사람이 너무 많아 성장이 제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좀 더 중요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내 역량을 발휘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스카우트됐다. 지금 일하고 있는 브랜드(트리젠코)는 재미있고 독특하다. 스위스 무브먼트에 사파이어 크리스털 유리를 채택했는데 디자인은 한국적이다. 제품을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거다.”

방동규씨가 디자인에 참여한 시계들. / 트리젠코 제공
방동규씨가 디자인에 참여한 시계들. / 트리젠코 제공
- 시계디자인에서 중요 포인트를 꼽는다면.

“시계는 굉장한 정밀성을 요구하는 제품이다. 아주 작고 다양한 부품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데, 1000분의 1초 단위로 오차범위가 왔다 갔다 한다.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기능적, 공학적 요소도 중요하다. 다른 디자이너도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지만 특히 시계디자이너는 그냥 디자인만 해선 안 된다. 제품의 제조공정, 개발 프로세스를 알고 제품 생산성과 양산 가능성을 고려해 디자인해야 한다. 종합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다른 점이다.”

- 디자인 감각 못지않게 엔지니어의 덕목도 필요하겠다.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시계에 대한 전반적 지식이 필수다. 실제로 학과 교육과정부터 일반적 디자인 전공과는 다르다. 정밀가공이나 조립 같은 공정이 있다. 시계 안에 들어가는 무브먼트 부품은 정말 작은데, 이걸 학생 때부터 직접 분해·조립·가공해 보는 거다. 시계에 관한 전문지식을 비롯해 기계공학 관련 내용도 수업에서 많이 배운다.”

- 단순 디자인이 아니란 거구나.

“그렇다. 시계주얼리의 큰 틀 안에 디자인 과목이 있는 거니까. 전체적으로 디자인보다 공학적 성향이 더 강한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인, 마케팅, 세일즈, 수리까지 시계의 전 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는 거다. 세분화된 맞춤형 전문지식을 배우는 게 강점이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주문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졸업 후 현장에 가서 바로 써먹을 수 있다.”

- 전문대 진학을 택한 이유가 있었는지.

“취업이 우선이었다. 전문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4년제 간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취업이란 정확한 목표가 있는 게 전문대의 강점 같다. 시계란 아이템도 나와 잘 맞았고. 4년제냐, 전문대냐보다 학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과는 희소성이 있으니까 졸업생들이 회사에서 인정받으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6)트리젠코 방동규 디자인팀 과장
- 학교 때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학과 교수님들 열정이 대단했다. 그래서 거의 놀아보질 못했다. (웃음) 수업 과제에 포럼 준비에… 사실 4년제 대학원 과정에서 많이 하는 학술포럼은 굳이 전문대에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그런 계기가 있어야 학생들이 발전한다면서 추진했다. 교수님들이 ‘전문대도 할 수 있다’, ‘결코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을 항상 강조했다. 4년간 배울 내용을 2년 동안 배우는 거니까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도 했다. 주말도 없이 살았다.”

- 학과 교수가 인터뷰 대상자로 추천했는데.

“글쎄, 특별히 잘한 건 없는데. (웃음) 시계주얼리학과로 바뀐 다음 가장 먼저 졸업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학교 때 매일 밤 10~11시까지 학과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프로젝트가 있으면 철야도 잦았다. 조선형 교수님 연구과제를 같이 했었고, 심화과정도 이수하면서 빨리 성장한 점도 있고. 학회장을 맡아 나름대로 리더십 있게 이끈 점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 2~3년 과정을 4년까지 늘리는 방안에 논란이 많다. 경험자로서 어떻게 보나.

“2년 과정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몰랐는데 회사생활 하니 보이더라. 그래서 전공심화과정을 들었다. 심화과정 수업은 실무와 연계된다. 업계 최고경영자(CEO) 등 현장에서 뛰는 분들이 강의를 맡았다. 현업에서의 의문점, 애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 결과적으로 총 4년 커리큘럼이 되긴 한다. 그러나 4년제 교육과는 분명히 다르다.

학사학위를 받긴 하지만 초점은 실무 쪽이다. 학위를 위한 과정은 아니다. 궁금했던 점이나 해결하지 못했던 점을 심화과정에서 풀 수 있다. 주로 CEO들이 강의하는데, 사실 회사생활 하면서 사장님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는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보면 학교 도움을 받아 실무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4년제대 따라하기’ 같은 우려는 안 해도 될 듯하다.”

- 업계에서 전문대와 4년제 출신에 차이를 두는 편인가.

“어느 조직에나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급여 체계나 진급 같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도 전공심화과정 같은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본다. 4년제 편입도 방편이 될 수 있지만 내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계주얼리에 집중된 교육과정은 여기가 유일하니까. 겉치레가 아니라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면서 학위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 강의도 한다고 들었다.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당부 한 마디.

“재작년부터 겸임교수로 모교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계 디자인부터 제품 개발, 생산, 기획까지 다룬다. 회사생활 할수록 기술이나 지식뿐 아니라 인성도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현업에서도 스스로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면 주변에서 더 알아주더라. 또 하나, 졸업하고 취업한다고 끝이 아니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그런 점을 늘 강조한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16)트리젠코 방동규 디자인팀 과장
◆ 나에게 전문대란…

태엽을 감으면 시계바늘이 돌아간다. 그때 밸런스휠이 움직인다. 형상이 심장 뛰는 것과 비슷하다. 내게는 시계가 심장이고 생명력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내가 시계를 선택한 건 아니다. 군 제대 후 학교에 돌아오니 학과가 바뀌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싫지 않고 재미있더라.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어서, 내게 잘 맞았던 것 닐까. 또 이렇게 시계 하나만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전문대라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남=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