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사이버 안전, 국가 안보 위한 길
최근 사이버 공간이 가진 야누스적인 모습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소형화된 컴퓨터를 신체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실용화되는가 하면, 빅데이터는 민관분야 정책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2020년에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장비의 수가 현재의 2배인 500억개에 달하고, 유통되는 데이터 양도 현재의 44배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이버 공간이 국제사회 연계성 증진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연계성 증진은 국가와 개인의 취약성 또한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소니 영화사에 대한 해킹 공격은 할리우드 산업에 대한 사이버 반달리즘으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 해커세력의 소행으로 판단되는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해킹 공격은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사이버 위협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또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증오를 확산시키고, 외국인 테러전투원을 모집하고 있다. ‘사회가 지혜를 모으는 것보다 과학이 지식을 모으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미국의 저명한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처럼 현대 기술사회에 내재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점증하는 사이버 위협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이버 공격을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국가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공격세력에 대한 제재 등 적극적인 대응의지를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지난해 사이버 방어가 NATO 집단 방위의 핵심과제라고 선언했다.

저비용·비대칭 도발수단으로서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노출된 한국도 양자 및 지역 차원에서 사이버 위협 대응을 위한 노력을 적극 추진 중이다. 미국과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사이버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러시아, 호주, 인도 등 세계 사이버 분야 주요 국가들과 사이버 정책협의회를 진행 중이다. 한편 글로벌 아젠다 해결을 위한 ‘새롭고 창의적인 파트너십’을 표방하며 2013년 가을 한국 주도로 창설된 중견국 협의체 ‘믹타(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등 5개국)’는 사이버 협력을 주요 협력기제로 다루면서 개방적이고 안전한 사이버 공간을 창출하는 데 기여코자 노력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육지, 바다, 하늘 및 외기권에 이어 ‘제5의 공간’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아직 이 공간에 적용할 국제규범이나 신뢰구축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국제사회는 그동안 ‘안전하고 개방된 사이버 공간’ 만들기에 힘써왔는데, 2013년 10월 한국이 주최한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가 대표적인 예다.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사이버 공간의 개방성과 안전성 증진방안을 모색하는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 부다페스트에 이어 세 번째였던 서울총회는 개도국의 참여를 대폭 확대해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의 보편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사이버 역량강화를 주요 의제로 도입하고, 사이버 공간에 관한 주요 원칙을 담은 ‘서울 프레임워크’를 도출한 바 있다.

필자는 16일부터 이틀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사이버 스페이스 총회에 직전 총회 의장 자격으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글로벌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의 혜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한편, 사이버 공간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기여하는 것은 곧 우리의 안보와 이익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