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이 "잠들 때도 대사 자꾸 맴돌아…리어가 몸 안에 들어왔네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거대한 산과 같고, 깊고 깊은 대양 같아서 연기자로서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돼요. 요즘은 잠이 들 때도 대사가 자꾸 떠올라요. 이제 서서히 리어가 제 몸 안에서 탄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오는 16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리어왕’에서 배우 장두이(63·사진)가 주인공 리어 역을 맡는다. 배우뿐 아니라 시인, 연출가,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내 배우로는 드물게 세계 연극계 거장인 폴란드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장두이가 ‘리어왕’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전 작품들에선 광대와 에드먼드 역을 각각 맡았다. 리어 역은 처음이다.

3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장두이는 “요즘 같이 아버지의 위상이 사라진 시대에 리어가 아버지로서, 또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삶에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려고 한다”며 “삶의 종말을 맞이할 때 자기 자신을 깨닫는 종교적인 차원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브리텐의 노쇠한 왕 리어가 믿었던 두 딸로부터 쫓겨나며 광인이 돼가는 모습을 그린다. 리어의 노여움을 사 추방당했던 막내딸 코딜리어가 아버지와 함께 언니들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결국 리어와 세 딸 모두 무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번 작품을 연출하는 윤광진 용인대 교수는 “리어를 연기하는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이라며 “극이 시작하자마자 분노를 폭발하고 딸들에 대한 저주를 외치며 미쳐가다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는 과정을 매번 연기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리어’를 45년 연기 경력의 베테랑 배우 장두이는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까. 장두이는 “리어는 인간의 관계와 죽음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까지 담아내야 한다”며 “인문학적 깊이가 없다면 표현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리어왕’에는 셰익스피어가 술 먹고 쓴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희극적 요소가 많다”며 “광인이 된 리어가 하는 말도 풍자적이고 통쾌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어가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45년 연기생활에서 이 작품이 새로운 연기자로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