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 "절대평가해도 사교육 안줄어든다"는 사교육업체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조기교육, 영재교육부터 초·중·고교, 대학, 평생교육까지 교육은 '보편적 복지'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계층과 지역간 교육 인프라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교육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를 연재합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전반의 이슈를 다룹니다. 교육 관련 칼럼과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Q&A 등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봉구 기자의 교육라운지] "절대평가해도 사교육 안줄어든다"는 사교육업체
학부모 93% “수능 영어 절대평가 해도 사교육비 줄이지 않겠다”

현재 예비 고1이 응시하는 2018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부터 도입되는 영어 절대평가와 관련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의 82.9%가 ‘현재 비용을 유지하겠다’고 답했고 10.3%는 ‘늘리겠다’고 했다. ‘줄이겠다’는 답변은 6.8%에 그쳤다.

여기까지만 보면 교육 당국의 정책이 의도한 사교육 경감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결론을 내릴 법하다.

하지만 설문을 진행한 주최 측을 확인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 설문을 실시한 곳은 영어 사교육 업체.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사교육 업체가 ‘교육 정책이 바뀌어도 사교육은 안 줄어든다’는 설문 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앞서 다른 입시교육업체도 자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여 ‘수능 영어 절대평가 시행 반대 56%, 찬성 44%’란 집계 결과를 소개했다.

일각에선 부적절한 처사란 비판이 나온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해 당사자가 이런 설문 결과를 내놓는 건 신뢰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모집단 표본이 적고 무작위 추출도 아니다. 설문으로서의 객관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교육부가 제시한 통계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을 공식 발표하면서 해당 설문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설문에선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 시 불필요한 학습 부담이 줄어들겠느냐’는 내용의 질문에 긍정적 답변 58.5%, 부정적 답변 27.1%로 나타났다. 명시적으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최근 사교육 업체가 진행한 설문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다.

물론 교육부 주관 설문은 맞고 사교육 업체가 실시한 설문은 틀린 내용이라고만 할 순 없다.

그동안 정부의 수많은 사교육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그리고 ‘내 자식을 타인의 자식보다 경쟁우위에 있도록 하기 위한 수단’인 사교육의 본질과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실제로 사교육비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어, 수학 등 여타 과목의 사교육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도 예상되는 부작용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이 24일 공개한 설문에 따르면 영어만 절대평가를 시행할 경우 풍선효과가 나타나고(89%) 수학 사교육비 부담도 커질 것(92%)으로 내다봤다.

다만 객관적 여론을 전달하는 설문의 기본 요건을 충족해야 할 필요는 있다. 앞서 언급한 사교육 업체들의 설문에는 자사 웹사이트 등을 통해 학부모·수험생 514명과 1637명이 각각 참여했다. 반면 교육부 설문은 학부모, 교사, 대학 관계자 총 1만1449명을 대상으로 했다. 사교육걱정의 설문엔 시민 833명이 참여했다. 모집단의 대표성과 공신성에서 차이가 난다.

이해 당사자가 팩트(fact)를 빙자해 여론몰이 하는 것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다른 곳도 아닌 사교육 업체가 여론을 대변하는 양 ‘사교육 안 줄어든다’는 카피를 뽑으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격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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