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는 문제 아닌 자산"…빗장 푼 獨, 경제성장 효과 봤다
“이민자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장의 핵심 자산이다.”

유럽 각국이 외국인 노동자의 이민을 막기 위해 앞다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만 이민자 유입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언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1일(현지시간) ‘2014년 국제이주보고서’ 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민자는 곧 자산”이라며 “숙련된 기술을 가진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국가와 국민 모두 윈윈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공적인 이민정책 사례로 독일을 꼽았다.

◆문 걸어 잠근 EU, 나홀로 문 연 獨

독일은 최근 유럽의 ‘이민 대국’으로 떠올랐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 새로 정착한 이민자 수는 45만명으로 최근 4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OECD 34개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2위 이민국 지위에 올랐다.

독일 이민자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증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독일로 이민을 온 사람은 39만9900명으로 미국에 이어 2위였다. 2007년만 해도 이민자 수는 23만2900명에 그쳤으나 5년 만에 71.7% 늘었다.

OECD는 이민이 독일의 고용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자국 노동자 간 노동시장 통합도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이민자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지난달 실업률은 20년 만의 최저 수준인 6.6%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를 거치면서도 나홀로 무난한 성장을 이어갔다. 독일처럼 고령화에 대비해 외국으로부터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는 정책을 펴 온 스웨덴, 네덜란드 등도 유럽연합(EU)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다.

반면 심각한 경기 침체에 시달린 국가들은 경제난의 화살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문을 더 굳게 닫았다. 2007년부터 5년간 이탈리아(-55%), 아일랜드(-73%), 스페인(-70%), 포르투갈(-28%) 등은 이민자가 급감했고, 여전히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구호 변질된 이민정책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유럽 주요국은 현재 노동자의 이민을 막기 위해 앞다퉈 장벽을 높이고 있다. 중도우파인 영국 정부는 물론 좌파인 프랑스 사회당 정권도 규제 대열에 동참했다. 스위스도 지난 2월 EU 시민권자의 취업자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민 정책은 노동인구 유입으로 인한 경제 효과가 부각되는 대신 유럽의 낡은 정치구호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유엔은 세계 이민자 수가 2억3200만명을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지만, FT는 “태어난 곳을 떠나 이주한 사람의 수는 세계 인구의 3%로 1960년의 비중과 똑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민자들이 공공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도 있다. OECD에 따르면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이민 가정은 세금 납부나 소비를 통해 정부 재정에 가구당 1000~1만5000유로까지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 이민 가정의 재정기여도도 4840유로였다. 동유럽 이민자들이 복지 혜택이 많은 서유럽 국가로 ‘복지 관광’을 온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득이 많다는 것이다.

◆숙련공들, EU 버리고 미국행

유럽 내 전문가들은 이민자 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이민의 질’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내건 전통적 이민 대국 미국은 최근 이민법 개정 등을 통해 고학력 숙련직 이민자들을 대거 수용했다. 미국은 지난해 이민자 수가 최근 10년 새 처음으로 100만명 밑으로 떨어졌지만 고졸자 이상의 고학력 노동자 신규 유입은 EU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불법체류자 1130만명 가운데 최대 500만명의 추방을 유예하고 이들에게 취업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이민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민자 고용시장에 또 한 번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 의회예산국은 지난해 6월 발표한 이민정책보고서에서 이민개혁 시 소득세와 급여세 등이 늘어 연방정부의 세수가 증가하고 10년 이내에 재정적자가 1750억달러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다.

한편 한국은 지난해 이민자 수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OECD에 따르면 2013년 한국 이민자 수는 6만6700명으로, 인구가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일본보다 3000여명 더 많았다. 한국은 2007년 이민자 수가 4만4200명에서 크게 늘어났고, 일본은 10만8500명에서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34개 회원국으로 가장 많은 이민자를 보낸 국가는 중국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