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37·연재를 마치며) "역사는 자주 갈림길을 만나는 산길 같은 것"
“역사는 자주 갈림길을 만나는 산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쉽게 돌아 나올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영영 길이 나뉘어져 ‘가지 않은 길’도 많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다양한 갈림길에서 왜 하필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질문해야 할 것이며 또 다른 길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아야 한다.”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37·연재를 마치며) "역사는 자주 갈림길을 만나는 산길 같은 것"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시리즈를 마친다. 1980년대 이후는 역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다.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쓴 글을 모으면 짧은 책 한 권 분량은 되므로 소감 몇 마디를 적어 맺음말로 삼고자 한다. 매주 원고를 쓰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덕분에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먼저 1년 가까이 함께한 독자와 귀한 지면을 제공해 준 한국경제신문사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매체의 성격 때문에 참고한 연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점에 양해를 구하며 감사드린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한국사 교육은 너무 중요해 교과서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독자라는 점 때문에 쉽게 써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다고 저절로 한국사 지식이 진보할 까닭도 없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거나 한국사에 각별한 관심이 없다면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국민의 ‘상식’을 형성하는 것은 청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국민 ‘상식’이 최신 연구 성과와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독자들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자주 접했겠지만 근현대사 교과서를 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전문 연구자가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내용이 ‘상식’ 다르다는 이유로 심한 비난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가능하면 최근의 연구 성과와 논쟁적인 주제를 피하지 않고 다루었다. 이번 신문연재가 청소년들이 최근 연구 성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어 장차 새로운 ‘상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경제사와 같이 사회과학 분야의 역사적 연구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기를 바란다.

전문 연구라고 하더라도 한국사의 지식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한국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지의 바다에 섬이 떠있는 것과 같다. 문헌 사료나 고고학 자료들은 과거를 명백하게 알기에는 항상 부족하며 부족한 사료를 연결하여 과거를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사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역사법칙이 있어 우리 사회도 그 법칙을 따라 현재에 이르렀다고 믿을 이유도 없다. 사회적 자연적 환경이 나라마다 제각각일 뿐 아니라 사람은 물리적 입자와 달리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같은 환경이라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지식을 가진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역사이며 그로부터 사회와 자연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여 더 나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기를 기약할 뿐이다.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37·연재를 마치며) "역사는 자주 갈림길을 만나는 산길 같은 것"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회가 문제 해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지금까지의 역사가 예상하거나 계획한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듯이 미래도 그럴 것이다. 역사는 직선으로 이어진 탄탄대로가 아니라 자주 갈림길을 만나는 산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쉽게 돌아 나올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영영 길이 나뉘어져 ‘가지 않은 길’도 많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좀 이상한 말이다. 다양한 갈림길에서 왜 하필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질문해야 할 것이며 또 다른 길로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아야 한다.

역사가 중요한 것은 현재 다른 방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크게는 과거의 선택, 곧 역사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선택이 과거의 사건이나 선택에 제약받듯이 미래는 현재의 선택에 크게 규정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결정적인 갈림길을 만났을 때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한국사에 대한 ‘상식’이 크게 좌우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사 교육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한국사는 암기과목이 아니다. 역사는 연표도 아니며 호사가의 고물 수집도 아니다. 짧은 분량에 자세히 쓸 수도 없었지만 글을 쓰면서 핵심적인 사실들을 연결하는 논리를 분명히 하려고 애를 썼다. 압축해서 서술된 내용을 ‘왜’라는 질문도 없이 무조건 외우면 흥미도 없을 뿐더러 기억도 잘 되지 않는다. 그 많은 사실을 다 암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검색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모두 암기할 필요도 없다. 똑같은 점들도 어떻게 선으로 잇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데 정확한 점들도 찾아내어야 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전체 그림이 아닐까? 경제학은 사실이라는 점을 잇는 강력한 논리를 제공한다.

왜 농업이 시작되었을까? 작고 단순한 사회가 어떻게 대규모의 복잡한 고대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을까?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하게 되었을까? 노비제도는 왜 번성하였으며 어떠한 이유로 쇠퇴하였을까? 농업기술이 발달하게 되는 동인은 무엇일까? 인구압력 때문일까? 지주제가 발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 왕조는 한번 생기면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을까? 조선왕조가 500년이 넘게 장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에 경제가 쇠퇴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경제학적 논리와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흥미가 있었다. 조선 후기부터 특히 근현대사에 한국 경제사 연구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보다 앞선 시기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제사는 전근대 시대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파괴하는 악역을 담당하는 듯하다. 산업혁명, 공업화에 의한 근대경제성장이 일어나기 이전 사회를 ‘맬더스 함정’에 빠져 있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를 못하여 기근이 반복되는 세계를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평균수명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이다. 생존에 필요한 열량과 영양분을 얻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삶을 생각할 때 공업화와 경제성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맬더스 함정에서 벗어나 근대경제성장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다른 많은 후진국을 뒤로 제치고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자립적으로 공업화와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까지 개항 이후 1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적의 역사가 한두 가지 요인으로 간단히 설명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중앙집권국가의 전통, 관료제의 유산, 소농경제의 성장, 근대적 제도의 수용과 학습, 식민지 시대의 공업화와 시장경제, 해방 후 농지개혁과 귀속재산 불하, 시장경제의 선택, 초등교육의 급속한 보급, 경제개발 계획, 수출지향 공업화, 산업정책, 미국의 원조, 일본의 국교정상화, 선진국의 기술이전과 자본수출, 북한과의 체제 경쟁과 같은 많은 요인을 열거해야 할 것이다. 어떤 나라는 번영하고 어떤 나라는 정체하거나 심지어 쇠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학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은 질문인데 우리나라의 역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구 자료이다. 자연과학과 같이 통제된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제학에서 한국 경제사는 좋은 실험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남북한의 대조적인 결과는 경제체제라는 제도가 얼마나 경제적 성과에 큰 영향을 주는지를 웅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사는 단지 우리나라 국민만 알아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경제학의 발전과 후진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역사가 되었다. 우리도 이제 시야를 넓혀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른 나라의 역사와 비교하고, 타국 나아가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김재호 <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