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여성CEO합창단이 지난 9월 서울 구로 테크노마트에서 열린 ‘산업단지 50주년 기념사업 및 CEO의 날’ 공연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하는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여성CEO합창단이 지난 9월 서울 구로 테크노마트에서 열린 ‘산업단지 50주년 기념사업 및 CEO의 날’ 공연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하는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목요일이었던 지난달 30일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건물 지하 1층 세미나실에 들어서자 30여명의 여성들이 즐겁게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이곳에 모여 합창을 하는 여경협 서울지회 여성CEO합창단 단원들이었다. 이들은 한 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 가족들 안부를 챙겨 묻고 합창 준비를 했다.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조화

여성CEO합창단은 여경협 서울지회의 동아리로 지난해 4월 창단했다. 현재 회원은 57명이다.

단장은 원완희 유림다이어리 대표, 부단장은 이종숙 천광애드컴 대표가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여경협 합창단은 동아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며 “단순히 취미를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성 최고경영자(CEO) 간의 소통과 정보교류의 장(場)으로서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부터 조경에 이르는 다양한 업종의 여성 CEO들이 합창을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봉례 여경협 서울지회장은 “사업으로 단련이 돼서 그런지 노래를 부를 때도 실전에 강하다”며 “연습 때보다 공연을 할 때 집중력이 좋고 실력을 십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원들 각자가 모두 회사 대표이지만 팔로어십이 좋다”며 “앞에서 이끄는 리더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휘와 합창 지도를 맡고 있는 장베드로 한국미래문화예술센터 대표는 “경영자로서 책임감이 남달라서 그런지 가사를 외워오라고 하면 다들 외워온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를 부를 때는 숨겨진 ‘소녀감성’이 잘 나타난다”며 “감성적이고 섬세한 표현이 여성CEO합창단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언니 동생’ 간에 나누는 정(情)

여성CEO합창단 단원은 3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신수연 전 여경협 회장(73)이 최고령이다. 합창단 기획이사를 맡고 있는 유정화 유엔아이컴 대표는 “올해 초 창단 1주년 기념으로 워크숍을 가서 나이순으로 줄을 세웠다”며 “나이 등 개인정보를 서로 공개할 기회가 없었는데 ‘언니 동생’ 하며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여성 CEO라고 하면 대한적십자사 총재인 김성주 성주그룹 대표 같은 인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남편과 사별 뒤 어렵게 사업을 시작한 사람, 파산 후 힘들게 재기한 사람 등 사연이 다양하다”고 전했다. 그는 “여성 CEO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매주 목요일마다 이렇게 모이는 건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라며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힘들다고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여성 CEO들의 기증도 합창단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첼로를 전공한 박선미 컬쳐비즈 대표는 연습실에 피아노를 기증했다. 유니폼 제작업체인 한스인터내셔널의 한정숙 대표는 단복을 맞췄다.

지난 9월 ‘산업단지 50주년 기념사업 및 CEO의 날’ 기념공연에선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삽입곡과 라트라비아타 등 오페라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하는 김정숙 라이트팜텍 대표는 “원어로 오페라 한 곡을 소화했다는 사실이 멋지지 않은가”라며 “합창을 통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다 보면 오늘 있었던 복잡한 일들을 잊게 된다”고 말했다.

알토 파트인 이정림 이림갤러리 대표도 “한 곡 가사를 소화하기 위해선 5시간 이상 집중해야 하고 계속 반복해야 한다”며 “노래를 하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면 한 주의 스트레스가 저절로 사라진다”고 거들었다. 그는 “1년이 넘으니까 정이 쌓여 합창단원들이 보고 싶어 나온다”고 덧붙였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