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3심 사건을 나눠 처리할 별도의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사건을 상고법원에서 처리할지 분류 기준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관련이 있고 한 번 기준을 만들면 장기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상고법원 설치 추진안을 올리고 판사들을 대상으로 내부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고 1일 발표했다. 상고법원은 사회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3심 사건을 처리하는 곳으로 대법원이나 고등법원 소속이 아닌 별도의 법원으로 설치된다. 지난 10년 동안 상고 사건 수가 두 배 늘어나는 등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판단에 따라 설치가 추진됐다. 전국에 5곳인 고등법원과 달리 상고법원은 서울에 한 곳 설치되는 게 유력하고, 법원장급이나 고등부장급 판사들이 재판을 맡을 전망이다.
3심사건 재판 어디서…갈길 먼 '上告법원'
관건은 대법원 또는 상고법원에서 재판할 사건을 어떻게 나눌지다. 대법원이 검토하고 있는 첫 번째 방안은 일정한 기준을 정한 뒤 이에 따라 상고법원으로 갈 사건을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민사·가사·행정 사건은 소송 가액에 따라, 형사 사건은 형량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고등법원이나 특허법원에서 올라오는 사건은 대법원에서, 지방법원 항소부에서 올라오는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사회적 중요도가 높은 사건은 자연스레 대법원에서 직접 재판하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방법은 사건 당사자가 재판 진행 절차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명백한 기준에 따라 나누기 때문에 자의적 분류라는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소송 가액이나 형량이 반드시 사건의 중요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대구 버스회사 금아리무진 근로자들이 회사에 “미지급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던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온 ‘통상임금 사태’의 시작이었지만 소송액은 1억8000여만원이었다. 기계적 분류 방식대로라면 이런 사건은 높은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상고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이 검토하고 있는 두 번째 방안은 사건의 내용을 심사해 ‘질적 분류’를 하는 것이다. 분류 심사는 대법원, 상고법원, 항소심 법원 가운데 한 곳에서 맡는다. 이 방법대로 하면 사회적 중요도가 높은 사건을 대법원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분류 심사를 대법원에서 하게 되면 판결은 상고법원에서 하더라도 일단 대법원을 한 번 거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러나 심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이에 대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한 변호사는 “상고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사람 가운데 공정한 재판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불만까지 나오게 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가지 방안의 절충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모은 뒤 올해 하반기에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