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난 못 생겼어" 케인스의 좌절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명저를 남긴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어린 시절 자신의 얼굴이 아주 못생겼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기처럼 못생긴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체격도 친구들보다 왜소했고 운동을 해도 늘 꼴찌였다. 외모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시기에 느끼는 고민과 좌절은 성장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케인스는 훗날 화가, 소설가, 음악가, 무용가처럼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중요시했다.

많은 사람은 경제학은 체계적인 논리와 고도의 수학을 기반으로 한 이성적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학 이론들은 경제학자 개인의 인생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는 20세기 이후 핵심 경제학자 14명의 삶을 다룬 책이다. 이론서라기보다는 경제학자들의 삶을 따라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영광과 패배’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책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케인스부터 시작된다. 케인스에 대한 분량이 책의 4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많은데 “현대 경제학을 논할 때 케인스를 빼고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13명의 경제학자들은 케인스를 따르는지 여부에 따라 분류된다. 2부에서는 폴 새뮤얼슨, 존 갤브레이스, 하이먼 민스키 등 미국의 케인스주의자들을 다뤘다. 3부는 밀턴 프리드먼, 게리 베커, 리처드 포스터, 로버트 루커스 등 케인스 경제학을 비판하며 융성한 통화주의자와 신고전학파의 이야기다.

4부는 경제사상이 케인스 경제학에서 미국의 경제학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도 독자성을 유지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출신 경제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카를 폴라니, 피터 드러커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은 신케인스주의자로 꼽히는 폴 크루그먼, 로버트 실러,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학설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세계적 학자들의 다양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4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새뮤얼슨의 경제학’은 처음에 750부밖에 찍지 않았다. 당시 하버드대에 다니던 새뮤얼슨이 유대계라는 이유로 스승 해럴드 버뱅크에게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뮤얼슨의 제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는 MIT 대학원에 다니면서 새뮤얼슨의 논문집 편집을 담당한 이후 오랜 시간 ‘새뮤얼슨의 편집자’로만 불렸다. 스티글리츠는 스승의 그늘에 가려질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저서 ‘풍요한 사회’를 통해 미국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갤브레이스는 제자였던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후 인도 대사 자리에 임명됐다. 그는 “내가 자신의 정부에서 일하기를 원하면서도, 미국과 인도만큼의 거리는 두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