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들 신고 출두하는 허재호 前회장 >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으로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8일 광주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이날 석방 후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 샌들 신고 출두하는 허재호 前회장 >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으로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8일 광주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이날 석방 후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국민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마냥 남의 일처럼 여기고만 있거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냉철하게 현실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박병대 법원행정처장)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황제 노역’ 판결로 인한 논란이 커지면서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자성론’이 나왔다.

박병대 처장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 “최근 우리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과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처신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일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준수 문제로 논란이 촉발되더니 곧바로 어느 한 법관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벌금형의 환형유치와 관련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며 “형평과 정의라는 사법의 근본 가치가 지켜졌는지를 두고 거센 비난이 일어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서 수석부장판사들은 △벌금 1억원 미만 선고 사건은 노역 일당을 10만원으로 하고 △벌금 1억원 이상 선고되는 사건은 노역 일당을 벌금액의 1000분의 1을 기준으로 설정토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노역장 환형유치 기간의 하한선도 설정했다. 즉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은 300일,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500일,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은 700일, 100억원 이상은 900일로 했다. 지금은 환형유치 기간이 ‘3년 이하’로만 돼 있고 하한이 없어 수십 일을 노역할 경우 하루 일당이 5억원이 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또 허 전 회장에게 ‘일당 5억원 노역 판결’이 내려진 배경으로 지목된 법원의 ‘향판 문제’와 관련, 지역법관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황제노역’ 판결을 탄생시킨 재판장이었던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은 2007년 대주그룹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는 시점에 대주그룹 계열사와 아파트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법원장은 2005년 대주 아파트를 분양받아 2007년 5월 이사했고, 5개월 뒤 기존에 살던 아파트를 대주그룹 계열사인 HH개발에 판 것으로 전해졌다. 29년의 재직기간 대부분을 광주에서만 근무한 장 법원장은 2010년 광주고법 부장판사로서 허 전 회장의 벌금을 절반으로 깎고 1일 노역의 대가는 1심의 2배인 5억원으로 환산해 판결했다.

한편 허 전 회장은 이날 석방 후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는 오후 1시26분께 광주 지산동 광주지검에 출두, “가족들을 설득해 (벌금을) 이른 시일 내 납부하겠다. 그동안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소람/광주=최성국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