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동료기자들과 함께 베트남을 찾은 데이비드 핼버스탬(맨 왼쪽). 한경DB
1960년대 중반 동료기자들과 함께 베트남을 찾은 데이비드 핼버스탬(맨 왼쪽). 한경DB
사람들은 정치인에 대해 가끔, 아니 자주 의아해한다. 많은 지식과 명문 학교의 졸업장을 갖고 있는 최고 수준의 인재들인데도 왜 종종 옳지 못한, 때로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말이다. 미국인들에게 그 치명적인 결정이란 베트남 전쟁이기 쉽다. 이 전쟁은 미국이 ‘패한’ 유일한 전쟁으로 불리며 분명 미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 나라는 무엇이고,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어떤 이들이며, 그들은 어떻게 출세했고, 자기 자신과 나라, 자신의 임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책마을] 미국은 왜 베트남戰을 벌였을까…그들은 똑똑했다…그래서 실패했다
2007년 교통사고로 작고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1972년 저작 《최고의 인재들》은 이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뉴욕타임스와 하퍼스매거진 등에서 일한 저자는 3년 반 동안 정책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500여명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관련 문헌을 읽으면서 책을 준비했다. 단순히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인터뷰와 생생한 현장 묘사를 통해 사진 찍듯 상황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돌이키기 힘든 발걸음을 뗀 케네디 행정부. 거의 모든 이들이 화려한 이들의 시작을 반겼다. 이들에게는 어떤 낙관주의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감과 이상주의였다. 겸손으로 포장돼 있었지만 그 안에는 오만과 독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똑똑했기에 역사와 현장에서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경제학자이자 케네디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월트 로스토는 호찌민을 ‘혁명의 잔해를 먹고 사는 짐승’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이 시대를 “엄청난 자만심이 지배한 시기”라며 “역사학자 데니스 브로건은 ‘반드시 자기가 이겨야 한다는 역사의식을 지닌 국민은 미국인밖에 없을 것’이라고 썼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의 핵심 설계자였던 포드자동차 사장 출신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에 대해서도 저자는 “미국의 급속한 기술적 성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그는 바보였다”고 단언한다. 그는 언제나 수치를 들이댔다. 수량화할 수 없는 문제를 수량화했고, 그것을 맹신했다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맥나마라는 1965년 다낭에 가서 해병대의 진전 상황을 살펴보았다. 1사단의 한 대령이 브리핑하면서 우호적 상황과 적대적 상황, 주요 문제점을 짚어갔다. 맥나마라는 집중하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마침내 손깍지를 끼고 한마디 했다. ‘자, 봅시다.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이건 당신이 처한 상황입니다.’ 그러더니 특유의 수치와 통계 자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쟁의 본질을 판단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1950년대의 매카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미국 정치 환경은 베트남전을 매우 확고한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하기 훨씬 전부터 베트남은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미국은 제2의 프랑스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가들은 민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은 똑똑한 인재들이 왜 점점 수렁에 빠져들었는지를 정책 결정자들 각각의 성격과 특성, 미국 국내 정치 환경과 베트남 현장의 상황을 직조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책의 질문에 대한 한국적인 답을 찾는 건 독자들의 몫이다. TV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미국 정치를 회고하지만 시원하게 본질적인 답을 풀어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 정치인들이 국가와 시간을 초월해 묘하게 겹친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