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물리학자가 빙벽 등반에 빠진 이유? 산은 곧 인생…차라리 왜 사느냐 물어라
1985년 유럽 알프스를 시작으로 1987년 네팔 에베레스트(8848m), 1994년 인도 탈레이사가르(6904m), 1998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와 트랑고타워(2004년·6239m), 우준브락(2008년·6422m)을 다녀온 핵물리학 박사가 있다. 2000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2001년 캐나디안 로키(4401m), 2009년에는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도 등반했다. 지난해 여름엔 해발 4000m급 준봉이 즐비해 ‘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의 ‘악사이 산군’을 한 달간 다녀왔다.

주인공은 정갑수 한국대학산악연맹 수석부회장(55·사진)이다. ‘브레인 사이언스’(2009)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2012) 등을 집필한 과학저술가이기도 한 그가 최근 ‘겨울산행과 빙벽등반’이라는 책을 냈다. 등반 관련 책만 이번이 세 번째다. 신년 산행을 떠난다는 정 부회장을 지난달 30일 서울 사당동에서 만났다.

정 부회장은 연세대 물리학과 78학번으로 1994년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를 설계했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방사선 종양치료 연구진으로도 활동했다. 1997년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1년 돌연 사직서를 내고 현재는 과학저술가로 살고 있다.

첫 질문으로 “산악인인가요? 핵물리학자인가요?”라고 물었다. “글쎄요. 굳이 직업을 말하자면 저는 과학저술가입니다”라고 답하는 정 부회장의 옷차림에 눈이 갔다. 연두색 아웃도어 다운점퍼에 빨간색 넥워머.

“물리학이 본래 물질의 구조,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거든요. 궁극적으로 소통의 이치를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 인생이고, 과학은 세상이죠. 과학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산에 올라 자연과 소통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생이던 1985년 연세대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학교의 후원을 받아 후배 한 명을 데리고 알프스 몽블랑(4807m)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교수가 되기까지 등산은 그저 취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본업인 교양과학책 저술을 하면서도 1년에 두 달가량은 해외 명산을 찾아 떠난다. 등산 루트도 일반 등산로가 아닌 암벽 또는 빙벽등반이다.

‘속세’의 질문에 ‘도인’의 대답을 한 정 부회장에게 교수 자리까지 내던지고 왜 그렇게 위험하게 사는지 물었다. “차라리 왜 사느냐고 물어보세요. 물론 정상에 오르면 별로 보이는 것도 없어요. 하지만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내디딜 때는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하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사는 이유죠, 허허.”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