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새벽 4시반 부산 범천동 동양증권 부산본부에서 임원과 지점장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부산지역 동양사태 피해자 대표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왼쪽). 피해자들은 지난 5일부터 7일 새벽까지 소파에서 잠을 자거나(가운데)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오른쪽) 농성을 계속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뽐뿌
7일 새벽 4시반 부산 범천동 동양증권 부산본부에서 임원과 지점장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부산지역 동양사태 피해자 대표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왼쪽). 피해자들은 지난 5일부터 7일 새벽까지 소파에서 잠을 자거나(가운데)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오른쪽) 농성을 계속했다.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뽐뿌
한 블로거가 7일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 게시판에 올린 ‘동양증권 부산지점 현재 상황’이라는 사진과 글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블로거는 ‘동양 사태’ 피해자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동양증권 지점장과 임원들이 동양그룹 회사채·기업어음(CP) 투자자들에게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을 올렸고 하루종일 인터넷에서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이 사진에 대해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위에서 무조건 팔라고 압력을 넣었겠지만 채권이나 CP가 완전 투기등급인데 디폴트 날 위험을 충분히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팔았죠”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사진은 이날 금융감독원 내부 인트라넷에도 올라왔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사진 속 상황은 이날 새벽 4시 반 부산 범천동 동양증권 부산본부에서 일어났다. 투자자들은 지난 5일부터 부산본부를 점거해 이날 새벽까지 3일간 농성을 하다 돌아갔다. 40~60대 여성 투자 피해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피해자는 “동양증권의 불완전 판매로 수천만원의 병원비와 전세금을 날렸는데 동양증권 직원들은 월급 다 받고 회식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앙된 심정을 토로했다.

투자자들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본부 내 회의실, PC와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피해자를 도와줄 별도의 직원 1명 채용 등을 동양증권에 요구했다. 한 피해자는 "피해자들 위임장작성을 위해 내주었던 공간을 동양증권측이 말도없이 치워서 다시 요구한 것"이라며 "다른 지점의 경우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증권 측이 이를 거절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일부 직원이 뺨을 맞거나 피해자들이 던진 집기에 다치기도 했다”며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에 따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부산 고객들의 피해의식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본부를 점거한 투자자들은 당초 30여명에서 6일 70여명으로 늘었고 동양증권은 본사 임원 2명을 보내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양측 간 대치가 정점에 치달았던 것은 7일 오전 1시였다. 투자자들은 전날 저녁 부산본부에서 음식과 맥주 90만원어치를 배달시켜 먹고 난 후 동양증권 측에 계산하도록 했다. 투자자들은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모임을 해산하지 않겠다”며 “본사에서 내려온 임원들을 다시 서울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자기도 뛰어내리겠다며 동양증권 임원을 건물 옥상으로 끌고 올라가 “뛰어내려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증권 부산본부 직원들은 이날 밤을 새워야 했다.

새벽 4시쯤 “임원들이 다시 돌아와 조치를 취할 것을 보장하라”며 무릎을 꿇고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 대표가 먼저 무릎을 꿇고 난 후 임원들도 따라 꿇었다. 결국 동양증권 임원과 지점장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동양증권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이 대치상황을 지켜봤다. 경찰은 기물 파손이나 신체적 위협이 없었다며 직접적으로 투자자들을 제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당이나 마산 이런곳은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근데 오늘 와서 상무가 그럽디다. 부산에 책상하나, 컴퓨터 하나, 전화하나 놓인 자리를 마련해주면 전국적으로 다 요구한다고, 그래서 못해주겠다고,

지난번에 피해자들 위임장작성위해 내주었던 공간을 말도없이 2주후에 우리 피해자 봉사자들 가고난후 다 치웠어요.

한편 피해자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나치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동양증권 직원들의 잘못보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오너의 잘못이 크지 않느냐”며 “피해자들도 억울하겠지만 군중재판을 하려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썼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