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을 선박에 결합한 ‘스마트십(Smart Ship)’이 국내 조선산업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조선산업은 선박 수주량과 건조량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기자재와 선박 통신장치 기술 등 핵심 기술에 대한 국산화율은 낮은 게 문제였다. 특히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뒤를 바짝 추격해오면서 위기감이 높아지는 상황.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이 3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선박용 차세대 레이더 시스템’은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성과로 꼽힌다.

ETRI·현대重, 크기 줄이고 정확도 높인 차세대 레이더 개발…디지털 레이더 '스마트한 배' 가 온다

○반도체 기반 선박용 레이더 개발

선박용 레이더는 섬이나 암초,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 등 바다 위와 아래의 위험물을 탐지해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핵심 IT 장비다. 현재 연안 어선 등에 쓰이는 소형 레이더는 대부분 국산화됐다. 하지만 컨테이너선, LNG선 등 큰 배에 들어가는 대형 레이더 장비는 모두 외국산이다.

ETRI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형 조선사, 중소 IT기업과 손잡고 3년간 104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이 제품은 선박용 레이더를 국산화했다는 것뿐 아니라 기존 진공관식 레이더를 반도체 기반 디지털 레이더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대형 선박에 쓰이는 마그네트론(진공관) 방식의 레이더는 부피가 클 뿐만 아니라 부품의 수명이 짧고 유지보수 비용이 높은 단점이 있다. 출력소자의 수명이 3000여시간에 불과해 4~5개월마다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이더의 감지 기능이 떨어져 작은 암초를 발견하지 못한다.

ETRI는 진공관 대신 질화갈륨(GaN) 반도체를 기반으로 고출력 전력소자를 자체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고출력 반도체 전력증폭기(SSPA)로 선박용 레이더를 만들었다. 부피가 크게 줄어들어 선박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출력소자의 수명도 5만시간에 달한다. 약 5년 동안 부품을 교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 레이더 개발을 주도한 문재경 ETRI GaN전력소자연구실장은 “일반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실리콘 반도체로는 높은 출력을 낼 수 없어 그동안 진공관 방식으로 레이더를 만들었다”며 “하지만 GaN반도체를 이용하면 출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GaN반도체는 2005년이 돼서야 상용화가 시작된 최신 기술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몇 개 국가만 GaN 기반 고출력 전력소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새 레이더 시스템은 해상도가 기존 제품 대비 2배 이상 뛰어나 악천후 속에서도 10㎞ 밖에 있는 70㎝ 소형 물체를 탐지할 수 있다. 또 신호처리가 디지털로 작동하기 때문에 스마트십에도 간편하게 통합돼 운용될 수 있다.

○스마트십 2.0

ETRI는 2011년에도 정부 지원을 받아 현대중공업과 선박통신기술(SAN)을 공동 개발하는 등 스마트십 기술 개발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SAN은 조선과 IT 융합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화면을 통해 선박 내 엔진, 항법시스템, 센서, 제어기 등 수백 개에 달하는 장치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육상 해운사가 위성을 통해 원격으로 선박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 유지·보수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다.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2011년 세계 최초의 스마트십을 건조할 수 있었다.

이번에 국산 디지털 레이더 시스템까지 개발되면서 현대중공업은 ‘스마트십 2.0’을 계획하고 있다. 레이더는 통합항해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를 위해 지난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울산광역시, 중소 IT업체 등과 함께 ‘조선해양IT 융합 혁신센터’를 세웠다. 사업이 완료되는 2015년엔 지상에서 선박기관 모니터링은 물론 기상상황과 주변 선박들의 운항정보, 항해계획 등 각종 정보를 종합 분석해 선박항해를 지원하는 스마트십 2.0이 완성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