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애는 자기만 키우나, 뭐 그리 유난"…"야근 때문에 육아당번 못한다고?"
오는 7월7일은 제 생일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정확히 열두 달이 되는 날입니다. 어른들은 첫 생일을 ‘돌’이라고 부른다죠. 엄마 아빠는 제가 생후 4개월이 되던 달에 서둘러 돌잔치를 위한 호텔급 뷔페 레스토랑을 예약했습니다.

사실 저도 많이 힘듭니다. 그렇지만 일하랴 양육하랴 고단한 부모님을 생각해서 잘 참아내고 있습니다. 모유가 신생아 건강과 발육에 좋다는 걸 알지만 애써 고집하지 않았고요, 엄마가 주시는 분유도 잘 먹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결혼하기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처녀 총각이었다고 합니다. 올해로 서른두 살인 엄마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S전자에 입사해 지금 대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같은 대학을 나온 아빠는 엄마보다 한 살 어리지만 고속 승진한 덕분에 벌써 초임 과장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대학 때부터 아빠가 엄마를 쫓아다닌 결과가 바로 저입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두 분이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서로 “널 만난 게 최대 실수”라며 싸우는 일도 잦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두 분의 사랑 덕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제가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맹렬하게 싸우고 나서는, 자는 척 눈 감고 있는 제 곁으로 각자 오셔서 넋두리를 하십니다. ‘金과장 & 李대리’ 독자 여러분, 저희 엄마 아빠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1인 3역 슈퍼맘 ‘엄마는 괴로워’

또 ‘번개’ 회식이다. 이틀 후면 정기 회식날인데도 두 달간 준비해 온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됐다고 부장님이 신이 나셨다. 잦은 음주로 나빠진 건강보다는 출근하는 주중에 아기를 대신 맡아주시는 시어머니가 더 걱정이다. 오늘은 모처럼 친구 만나신다고 오후 7시까지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오늘만 봐주세요 부장님. 아기 데리러 가야 해서요. 모레는 열심히 마시겠습니다.” 부장님 표정이 나쁘지 않다.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친정어머니와 같이 사는 워킹맘 박 과장이 “애는 혼자 키우나. 맨날 자기만 빠져”라며 딴죽을 건다. 이도 모자라 “엄마 티좀 적당히 내면 좋을 것 같다”고 염장을 지른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같은 ‘워킹맘’이라고 해도 친정에 사는 것과 시월드에 사는 것이 다르고, 보모를 두고 있는 경우는 더 다르다는 사촌 언니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남은 업무를 서둘러 끝내고 나왔지만 시곗바늘은 벌써 오후 7시를 가리킨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시어머니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오후 7시까지 와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는데…”라고 핀잔을 하시면서도 “우리 예쁜 강아지, 할미가 또 보러 올게”라며 아기 볼에 입을 맞추는 시어머니가 고마워 용돈 10만원을 더 챙겨 드렸다.

“여보, 우리도 보모 쓰자.” 더 이상 직장 상사와 시어머니 눈치 보기가 싫어 남편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은 또 대출 타령이다.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빠듯한 판국에 보모가 가당하기나 하냐며 타박한다. 돈 들어갈 일이 생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 먹는 말이다.

“그럼 나 사표낼게.” 큰 맘 먹고 던진 말인데, 남편이 이번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본격적으로 싸울 태세다. 가계부를 직접 챙길 정도로 꼼꼼한 그의 입에서 지난달 분유와 기저귀를 산 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에서부터 시작해 또다시 대출금 얘기로 넘어갔다.

심하게 몰아붙인 게 미안했을까. 위로하듯 내 어깨에 남편 손이 올라왔는데 금세 ‘몹쓸 손’으로 돌변했다.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고 소리를 지르며 손을 뿌리쳤지만 내 속도 편할 리가 없다는 걸 알기나 알까.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옆방으로 건너가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블로그에 오랜만에 접속했지만 5분이 채 안 돼 컴퓨터를 꺼야 했다. 블로그 회원 10명 가운데 7명이 전업주부인 탓에 상실감만 커졌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다음달부터 아기 마사지 수업을 한다는데 같이 갈 사람~”을 외치는 전업주부들이 워킹맘의 애환을 얼마나 알까. 가정에서는 엄마이자 아내로서, 직장에서는 고참 대리로서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는 ‘슈퍼맘’이지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다. 괴로운 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워킹맘 아내 둔 남편 “나는 어떡해”


오후 6시가 퇴근 시간인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사정 얘기를 하고 먼저 일어서도 될까? 잔뜩 찌푸린 팀장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욕먹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어쩌지?”

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가서 아기를 돌보기로 아내와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일부 일이 밀려 있기도 하지만, 전날 부인과 한바탕 ‘적벽대전’을 치른 팀장은 이미 야근 모드다. 차라리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낫겠다 싶어 전화를 했다가 결국 “애를 혼자 낳았냐”는 잔소리만 된통 들었다. 가까스로 저녁 9시에 사무실을 나와 집에 가는 길에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장미를 한아름 샀다. ‘이걸로 아내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 내내 발걸음이 무겁다.

“이번 토요일에 시간 비워 놔. 바이어랑 골프 약속 잡혔어.” 상무님은 이 말만을 던진 뒤 곧바로 외출했다. 아뿔싸, “이번 토요일에는 약속이 있는 아내를 대신해 제가 아기랑 놀아줘야 합니다”라는 말이 입안에서 줄곧 맴돌았지만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얘기했어도 잔소리만 들었을 확률이 99%지만…. 사실 인사를 1개월여 앞둔 이 시점에 상무님에게 ‘노(No)’라고 얘기할 자신도 없다.

결국 집에 가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하지만 얘기를 다 들은 그녀는 “일은 당신만 하냐. 한 달 전에 잡힌 대학 동창회를 겸한 절친의 뒤늦은 결혼식에 결단코 빠질 수 없다”며 몰아세웠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나라도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속에 담아 둔 말을 꺼냈다. “우리 부모님이랑 합치면 어떨까.” 집사람 얼굴이 펴지기는커녕 한층 더 일그러졌다. 직장 상사도 모자라 시어머니 시아버지에 노처녀 시누이 눈치까지 보며 살고 싶지는 않단다.

“그럼 부산 자기 친정에 맡겨 보는 건 어때?” 당분간 처가에 맡겨보자는 제안에 아내는 아기 교육과 정서에 좋지 않다며 “싫다”고 했다. 나는 어떡해야 할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두 학번 위인 K선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수백 번 되뇌이고,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 선배가 부럽다. 매출 3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오너 2세인 그는 아이가 셋이나 된다. 보모를 두 명이나 쓰는 그는 단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밤중에 우는 아이 때문에 잠에서 깬 적도 없어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통한다.

주중에는 ‘비즈니스’를 핑계 삼아 저녁마다 술자리를 다니고 주말에도 토요일, 일요일 할 것 없이 골프를 즐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부간 불평불만과 다툼이 없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육아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에선 해방됐다는 게 마냥 부럽기만 하다.

김병근/전설리/황정수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