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엔드레스家의 가족경영 > 엔드레스하우저 본사에서 페터 그뤼닝거 판매부장이 회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엔드레스
가(家)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경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스위스 엔드레스家의 가족경영 > 엔드레스하우저 본사에서 페터 그뤼닝거 판매부장이 회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엔드레스 가(家)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경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족 간 경영 승계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한국 중소기업인들의 질문에 페터 그뤼닝거 엔드레스하우저 판매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獨, 7년 고용유지땐 상속세 면제…"富아닌 책임감을 물려줍니다"
스위스 계측기 메이커인 엔드레스하우저는 엔드레스가(家)의 자손 43명이 지분 100%를 나눠 갖고 있는 히든챔피언 기업이다. 지난 1일 찾은 바젤 인근 엔드레스하우저 본사에 들어서자 외벽에 쓰인 특이한 사명이 눈길을 끌었다. ‘Endress+Hauser’다. 1953년 기술자인 게오르크 엔드레스와 은행가 루트비히 하우저가 합작으로 회사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5년 하우저의 사망 후 하우저가는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지분 전량을 내놓았다. 이후 엔드레스가에서 이를 매입해 경영을 이어왔다. 회사는 연 매출 15억유로(약 2조1500억원)를 올리며 11개국 19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 獨 케르허 공장의 근로자들 > 독일 빈넨덴의 케르허 공장 직원들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고압력 청소기 조립 라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 獨 케르허 공장의 근로자들 > 독일 빈넨덴의 케르허 공장 직원들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고압력 청소기 조립 라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엔드레스가에서 후계자를 정할 때는 경영을 맡을 의사가 있는지를 최우선적으로 따진다. 경영 의지가 있으면 능력은 키워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반 직원과 같이 입사해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해외지사에서 최소 10년 이상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대신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면 전문경영인을 쓸 수도 있다.

그뤼닝거 부장은 “현재 사장인 클라우스 엔드레스는 조만간 퇴임할 예정”이라며 “다음 세대 자손들이 아직 어려 후임은 전문경영인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겐 ‘최소 10년 근무’란 조건을 내걸었다. 지속가능한 책임 경영을 위해서다. 그 이후는 현재 해외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엔드레스가의 사람이 다시 회사 경영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독일의 히든챔피언 그로프의 최고경영자(CEO) 부르크하르트 그로프도 창업주의 아들이다. 클라우스 루돌프 뮈즐 부사장은 “7년간 고용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면제해주는 제도 덕분”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 30%를 그대로 적용받으면 어떤 기업도 가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상속세는 최고세율이 30%지만 한국은 50%다. 영국과 프랑스(40%)보다 높은 수치다. 상속세 공제 조건도 10년 이상 동일업종을 유지하면서 300억원 한도로 상속재산의 70%라는 제한이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공제 한도를 500억원까지 늘리거나 공제 비율을 높여줄 것을 요구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중소·중견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재 10년인 최소사업영위기간을 5년으로 단축해 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뮈즐 부사장은 “가업 승계 방식의 경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데 유리할 뿐 아니라 고용 유지가 상속세 면제 조건이다보니 임직원들의 직업 안정성이 높다”며 “히든챔피언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가업 승계를 후손에게 부를 물려주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경영 책임을 이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에 대한 부담이 커서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에 다투는 일도 없고 회사를 쪼개 나눠 가질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빈넨덴에 있는 청소기 전문 기업인 케르허 역시 창업자인 알프레트 케르허 가족이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다. 78년 역사를 가진 이 회사는 1959년 케르허가 타계한 이후 아내인 이레네 케르허가 경영을 이어 받았다.

당시 250명이던 직원은 지난해 9600명이 넘었다. 1962년 프랑스에 첫 해외지사를 낸 것을 시작으로 현재 60개국에 진출해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얻고 있다. 1984년 세계 최초 이동식 고압력 청소기를 출시했고 관련 보유 특허만 460건이 넘는다. 1990년부터 전문경영인인 하르트무트 옌너 CEO가 대표를 맡아왔지만 케르허가가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울리히 슈마허 케르허 홍보부장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케르허가가 회사 행정위원회의 일원으로 있다”며 “회사가 가야 할 큰 방향을 그리고 투자 전략을 논의할 때는 이사회와 함께 상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히든챔피언을 둘러본 중소기업인들은 기업을 공개하지 않고 가족 소유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존경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러울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라이나흐(스위스)/빈넨덴(독일)=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