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상황에 맞게 절단이나 조립작업을 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 기술은 1960년 유니메이션이라는 미국 회사가 개발했습니다. 이 회사가 1975년 제너럴모터스(GM)의 지원을 받아 최초의 산업용 상용 로봇인 퓨마(PUMA)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죠.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02년에 역시 미국 회사인 아이로봇(iRobot)이 룸바라는 청소 로봇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첫 개인 서비스 로봇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퓨마나 룸바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KAIST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네 번째 수업은 지난 19일 대전 KAIST 본교에서 권동수 기계공학과 교수의 강의로 진행됐다. 권 교수는 KAIST 인간-로봇상호작용연구센터장이자 한국로봇학회장을 맡고 있다. 국내 로봇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이다.

‘로봇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수업을 시작한 권 교수는 곧 30여명의 학생을 네 개 조로 나눴다. “저는 로봇에 대해선 조금 알지만 비즈니스에 대해선 기업인 여러분에게 배워야 하는 처지입니다. 오늘 강의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 여러분에게 로봇의 상용화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로봇 활보하는 시대는 언제

“2035년이 되면 과연 서울 강남 한복판에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을까요? 기업들은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같은 자동차 기업들도 인간형 로봇을 20년 넘게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군사용 로봇에서 앞서가고 있고요. 삼성과 현대중공업 등 국내 기업들의 로봇연구도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이렇게 다들 열심히 하는 건 뭔가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겠죠.”

○조작과 이동은 상당 수준

권 교수는 로봇의 기능을 손동작, 이동, 길찾기, 디자인, 인식, 지능 등 6가지로 세분했다.

“우리가 냉장고 안의 달걀을 잡아 식탁으로 옮긴다고 생각해 봅시다. 간단한 행동이지만 컴퓨터가 한다면 엄청난 계산이 필요합니다. 눈으로 달걀인지를 파악하고, 어느 정도 세기로 잡아야 할지 계산을 해야죠. 달걀을 향해 손을 움직이는 데도 역시 3차원의 계산이 필요하고요. 달걀을 집어서 몇 걸음 옮기는 것, 식탁 위에 깨지지 않게 올려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서 상영된 동영상에는 로봇이 카메라로 물병을 보고 손으로 잡아서 뚜껑을 열고 물컵에 따른 후 다시 제자리에 잡는 모습이 나온다. 독일 우주항공연구소에서 개발한 ‘저스틴’이라는 로봇이다.

“저스틴은 미리 프로그램된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물건을 인식한 후 팔을 움직일 범위나 병을 잡는 세기, 병을 기울일 각도까지 스스로 계산합니다. 단순한 동작이긴 하지만 바텐더가 하는 동작을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동성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로봇이 되기엔 시간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

다음 동영상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군사용 로봇 ‘빅 도그’다. ‘큰 개’라는 이름처럼 네 다리로 산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병사 1인당 1개의 빅 도그를 지급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2008년 빅 도그가 처음 공개됐을 때 저같이 20년 넘게 로봇을 공부한 학자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잘 걸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엔진이 너무 시끄러워서 군사적인 용도로는 불합격이었습니다. 2년 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엔진을 가솔린에서 배터리 방식으로 바꿔서 다시 내놨습니다. 이번엔 조용했지만 한 시간밖에 못 걸어서 또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회사가 망했을까요? 천만에요. 이 회사는 작년에 또다시 미 정부로부터 3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로봇 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동시에 미국이 로봇 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알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죠.”

○길찾기 단계부터 난관 시작

다음은 길찾기다. 좁은 공간에서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로는 수없이 많다. 이 때문에 길찾기는 로봇에게 본격적으로 의사 결정 기능이 필요해지는 단계다.

“사람은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눈으로 벽이나 물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지도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위치를 찾아냅니다. 지도 그리기와 자신의 위치 찾기, 그리고 그 정보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는 것이 길찾기의 핵심이죠. 로봇은 이 작업에 엄청난 계산을 필요로 합니다. 이 기능을 SLAM(실시간 지도 작성 및 위치 파악)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청소 로봇에 일부 구현된 수준입니다.”

○본격적인 인식과 판단의 단계

다음은 ‘인식’이다. 로봇이 가져야 할 핵심 기능에 한 단계 더 접근했다. “제가 권동수인지 아닌지, 제 동료들은 저를 보면 한순간에 알아채죠. 하지만 기계는 제가 사람인지 아닌지도 잘 모릅니다. 더구나 겉모습을 보고 웃는지 우는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파악하는 건 더 어렵죠. 사실은 사람도 이런 인식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으로 사람이나 사물의 정체성이나 동작, 감정 등을 인식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현재 로봇 과학자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 가장 발전된 ‘아다부스트’ 기술은 아예 기계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사람의 얼굴을 눈, 눈썹, 코, 입술 등으로 세분화해서 움직임을 따로따로 인식하는 것이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이 작아지는 것은 ‘웃음’, 입가가 떨리고 눈이 커지면 ‘분노’ 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제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는 지능 부분입니다. 지능은 우리가 로봇에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대하기 때문에 핵심적인 기능이죠. 지능 역시 아직 우리 인간이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처음 형태는 수많은 규칙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이 상황에선 이렇게, 저 상황에선 저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이 방식은 규칙이 너무 많아지면 어떤 규칙을 적용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은 ‘자극에 대한 행동 규칙의 집합이 지능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또 인간의 신경망을 로봇의 학습과 지능에 접목하려는 시도나 생물의 진화 과정을 통해 지능을 구현하려는 접근도 있습니다.”


○로봇 시장은 언제 열릴 것인가

“이제 조별 토의를 해볼 시간입니다. 미국의 얘기이긴 하지만 자동차는 1886년에 기술이 등장했고 1908년에 대량생산이 시작됐죠. 1960년 가구당 1대, 1972년 운전자당 1대로 시장 성숙기에 들어갔습니다. 대량 생산부터 시장 성숙까지 64년이 걸렸죠. PC는 1981년 IBM이 대량 생산에 들어갔고 2010년 1인당 1대 수준으로 보급됐습니다. 시장 성숙까지 30년 정도 걸렸네요. 휴대폰은 1983년 모토로라가 대량 생산을 시작했고 2010년 1인당 1대가 보급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로봇 시장은 언제 열릴까요?”

어떤 로봇이 필요한가, 대량 생산에 얼마나 걸릴 것인가를 두고 조별 토론이 시작됐다. 가장 많은 조가 ‘실버로봇’ 아이디어를 냈다. 말동무가 돼 주고 잔심부름을 해주는 로봇이다. 대량 생산까지 낙관적인 조는 5년, 신중한 조는 1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깊은 바다나 원자력 발전소 같은 위험 지역의 작업을 대신해 주는 로봇, 교육용 로봇 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예전에는 정해준 일을 반복하는 공장 기계들도 로봇이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행동까지 옮기는 지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로봇의 정의죠. 그런데 ‘지능’이라는 개념에는 사회적, 윤리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로봇이 주인을 보호하다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많은 로봇학자들이 이런 고민을 마음 속에 품고 로봇을 개발하고 있답니다.”

권동수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인간-로봇상호작용연구센터장>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