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샷이 러프에 들어갔다. 레이업도 고약한 상황이다. 공을 옆으로 한 뼘쯤 옮기면 그런 대로 2온도 노려볼 수 있겠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캐디도 다른 클럽을 가지러 전동카트 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어떻게 할까. ‘공은 있는 그대로 쳐야 한다’는 골프 규칙을 따를까. 공을 발로 슬쩍 건드려 치기 좋은 지점으로 옮겨 놓을까.

애버리지 골퍼의 선택은 후자 쪽이다. 누구도 1925년 US오픈에서의 보비 존스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미 듀크대 교수의 2009년 설문 결과가 그렇다. ‘다른 골퍼들’의 절반 이상이 공을 옮기는 부정을 저지를 것이라고 응답했다. 클럽으로(23%), 발로 차서(14%), 손으로 집어서(10%)다. ‘자기 자신’의 부정 가능성은 낮게 봤다. 각각 8%, 4%, 2.5%가 그런 방식으로 볼을 옮길 것이라고 했다.

이 설문 결과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부정행위와 관련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을 때 대개는 부정행위를 저질러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멋지게 보이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란 얘기다.
애리얼리 교수는 새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서 이 주제를 파고든다. 정직하지 못한 비윤리적 행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게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다. 그러면서 부정직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부정행위가 합리적 비용편익 분석의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정행위는 할 수 있는 상황이면 누구나 저지른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도덕성 기준에 따라 그 규모나 수준이 달라지기는 해도 말이다.

미 워싱턴에 있는 케네디예술센터 선물매장의 도난 사건이 좋은 예다. 300여명의 점잖은 은퇴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거드는 이 선물매장의 매출은 40만달러나 되는데 해마다 15만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품이 새나갔다. 예술을 사랑해 자원봉사를 자청한 선한 노인 대부분이 현금상자에서 조금씩 돈을 빼냈다는 얘기다.

저자는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은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이어트 중에 과자 한 개쯤은 먹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 십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꽤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사소한 부정행위쯤은 허용하고 만다. 그러나 스스로 정한 기준을 한번 어기면 더 이상 자기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명품과 짝퉁 실험이 이를 보여준다. 짝퉁을 쓰게 한 이들은 도덕적 제약이 느슨해져 부정행위의 길로 접어들기 쉽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정직성까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정행위의 전염성에도 주목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 규범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때 자신의 도덕성 범주을 수정하고, 그의 행동을 자신의 모델로 삼는다고 말한다. 부모나 직장상사, 교사나 존경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회사처럼 조직원이 서로 협력하는 환경에서 부정행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도 관심을 쏟는다. 자신의 부정행위로 다른사람이 이득을 볼 때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실험결과를 내놓는다. 이타적인 차원에서 하는 부정행위는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부정행위보다 합리화하기 쉽기 때문에 도덕적인 금기의 벽을 허물기도 쉽다는 것.

저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부정행위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선량한 사람들이 야근 시간을 부풀리고, 보험금을 실제 피해 규모보다 많이 청구하며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등의 사소한 부정행위로 인한 피해가 소수의 큰 도둑으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부정행위를 하도록 유혹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도덕적 각성장치’를 마련하고,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는 즉시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