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조정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보다 낮아졌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 증시가 과도한 저평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증권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이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에 도달했거나 근접한 종목이 속출하고 있어 업황 등을 고려해 저점 매수에 나서볼 만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작년 9월보다 싸진 증시

14일 코스피지수는 3.40포인트(0.18%) 하락한 1913.73으로 마감됐다. 코스피지수는 오전 한때 1900.43까지 밀려 ‘1900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과 개인이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장 막판 낙폭이 크게 줄었다. 기관과 개인은 각각 1169억원과 939억원을 순매수했다.

기관이 이날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은 ‘국내 증시가 과도하게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1일 기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코리아지수의 12개월 예상 순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8.3배로,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던 작년 9월 말의 9.8배보다 낮아졌다.

지역별로 봐도 국내 증시는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싼 수준이다. 이머징마켓 중 브라질 보베스타(9.1배), 중국 상하이종합지수(9.2배)가 그나마 코스피지수와 비슷한 수준이고 인도 센섹스(12.8배), 인도네시아 IDX종합(13.0배), 홍콩 H(14.3배) 지수 등은 한국보다 PER이 더 높다.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11.8배)와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12.6배) 등 선진국 증시도 한국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조정은 실물경기 회복 부진, 유로존 위기에 대한 우려, 외국인 매도에 따른 수급 악화에 의한 것”이라며 “기업 실적과 밸류에이션 측면에서의 투자 매력도는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곽현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8~9월은 상장사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초기 국면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증시 주변 여건은 여러 면에서 나아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저점 매수 나서볼까

증권가에서 코스피지수가 지금 수준에서 하락세를 멈출 것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럽 등 대외 환경이 워낙 불안해 증시에 언제 충격이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경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종전 주요 지지선이던 1930이 무너진 상황에서 200일 이동평균선(이평선)이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과 지수가 120일 이평선 밑으로 내려온 점 등이 부담 요인”이라며 “1900선까지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주가가 워낙 싸지다 보니 무조건 매도하기보다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볼 만한 시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강현기 솔로몬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부터는 글로벌 경기가 서서히 회복 국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여전히 ‘투자 유의 구간’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조정은 저점 매수의 기회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이후 최저 PER 종목들

증시가 저평가 영역에 진입하면서 PER이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에 도달했거나 근접한 종목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주당순이익(EPS) 추정 기관 10곳 이상인 종목 가운데 PER이 2005년 이후 최저인 종목은 KT(5.9배)와 스카이라이프(15.3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치에 근접한 종목 가운데는 BS금융지주(5.3배) 하나금융(5.1배) DGB금융지주(5.9배) 삼성화재(11.5배) 등 금융주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SK텔레콤(6.7배) 롯데쇼핑(8.1배) 등도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단순히 주가가 싸졌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업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저평가 종목 가운데는 통신주보다 금융주가 상대적으로 나아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