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건설사에 다니는 이모 부장(52)은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안양 평촌신도시의 공급면적 125㎡(옛 38평)짜리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 한때 7억원을 호가하던 시세는 5억원 초반까지 하락했지만 수익성 부동산으로 갈아타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이 부장은 올초 동탄신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급면적 165㎡ 규모의 상가 점포와 93㎡의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대출을 끼고 매입한 터라 매달 이자를 갚아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자녀들도 다 컸기 때문에 굳이 넓은 집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씨의 큰 아들은 군대에 갔고 딸은 학교와 학원이 끝나면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는 고등학생이다.

이씨는 “굳이 넓은 집에서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집 평수를 줄이거나 아예 전세를 살고 남는 돈으로 대출을 갚을 생각”이라며 “미래를 생각하면 안정적인 임대료가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해 놔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내도 수익형 부동산으로 갈아타는 것에 적극 찬성했다.

큰 집에 살던 ‘1차 베이이붐 세대(1953~1963년생)’가 은퇴시기를 맞아 보유 부동산을 시장에 대거 쏟아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매물 과잉으로 집값은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집 장만에 ‘올인’…불안한 노후

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와 부동산114가 올초 내놓은 ‘한·일 인구구조변화로 본 국내주택시장의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열심히 일해 중대형 아파트를 장만해 온 베이비붐 세대들의 패턴이 뚜렷이드러난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1차 베이비붐 세대 인구 비중은 1990년에 서울 62%, 신도시 22%, 경기도 17% 등이었다. 2010년에는 서울 50%, 신도시 26%, 경기도 24%로 변화했다. 넓은 집을 찾아 수도권이나 신도시로 이동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작년부터 1955년생들이 퇴직을 시작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노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조를 바꾸는 것이 은퇴설계의 핵심으로 부각되면서 베이비 붐 세대들이 부동산을 처분할 것이란 전망이 잇달았다.

2010년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가구당 자산은 평균 2억7268만원이다. 이 중 75.8%는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 금융자산은 21.4%에 불과하다.


◆고정수입 없어지면 큰집은 짐

서울 강남역 인근 서초동에서 148㎡(옛 45평) 규모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은퇴자 김모씨(58)는 요새 강북에서 작은 상가점포와 소형 아파트를 찾고 있다. 시세가 13억원에 달하는 집을 팔아 3억~4억원대 소형 주택을 사고 나머지는 상가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갈현동에 있는 유찬영 하늘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아파트 거래는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강남 10억~12억원 짜리 아파트를 정리해 이쪽에 조그만 수익형 부동산을 장만하고 거주는 전셋집에서 하려는 강남 은퇴자들을 종종 본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은퇴 후 고정적인 수입은 사라지는데 돈 들어갈 곳은 적지 않다는 것이 베이비붐 세대들의 고민이다. 은퇴 후에도 자녀 결혼자금과 의료비, 생활비 등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필요한 은퇴자금의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는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는 주택 매도시점을 얼마든지 늦출 수 있지만 하락기에는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앞으로 노인 인구가 전체의 40%를 넘어서고 2030년부터는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돼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전망했다.

그는 “금융자산 비율을 높여야 하는 만큼 주택의 크기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교외 및 지방으로 이사하거나 주택연금 가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택 처분·다운사이징 본격화되나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들의 주택처분이 대규모 매물로 쏟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알투코리아의 김희선 전무는 “이들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라도 당장 금융상품을 투매하듯이 보유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보유한 현금자산을 먼저 사용하고 집도 역모기지를 활용해 노후자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취직과 결혼이 늦어지는 ‘캥거루 세대’여서 늦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부담도 있다. 김 전무는 “실거주 주택보다는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 수도권 외곽에 투자해 놓은 대형 주택이나 100% 투자용인 재건축·재개발 물건 위주로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또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團塊,1947~1949년 출생)’와 국내 베이비붐 세대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단카이 세대는 은퇴 당시 충분한 연금과 축적된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는 토지가격 하락에서 출발해 국내와는 차이가 있다는 논리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인구구조 변화가 부동산 시장의 주요 변수이기는 하지만 경제성장률이나 지역 특성 등 여러 요소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한 싱가포르 홍콩 독일 등에서도 집값이 무조건 하락하진 않았다”며 “일본의 빈 집 800만가구도 대부분 외곽에 있고 도심이나 역세권에선 월세가 비싸다”고 덧붙였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도 “베이비붐 세대는 거액의 현금자산을 가지고 있기보단 부동산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의외로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잠재적인 은퇴세대들로 인한 이른바 ‘고령화 쇼크 매물’은 없을 것”이라며 “대신 다가구 주택 보유자를 중심으로 서서히 매물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