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틈새시장서 주류되기 제1법칙…'숭배자'를 양성하라
미국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이 1929년 공식화한 ‘호텔링 법칙’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상식 같다. 호텔링은 대중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가장 많은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정확히 중간에 상품을 갖다놓고 장사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기업들은 중간층 소비자에게 주목했다. 의류업체는 모든 세대를 위한, 누구나 입는 옷을 만들어 소비층을 넓혔다. 할리우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죠스’와 같은 블록버스터를 앞세워 최대한의 관객을 빨아들이는 데 열을 올렸다. ‘옴니버스’라는 프로그램처럼 미국 TV는 상류층도 하류층도 아닌, 평균적인 미국 대중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프로그램을 틀어댔다. ‘개성’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요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했다. ‘중간’과 ‘대중’만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소비자는 변덕스러워졌다. 클릭 한번에 마음이 움직인다. 브랜드 충성심은 간데 없고, 부동층은 두터워지고 있다.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통한 타깃 마케팅도 점점 힘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다. 중간과 대중이 아니라면 ‘니치(niche)’, 즉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영국 저널리스트 제임스 하킨도 《니치》에서 “이제 니치는 틈새가 아니라 주류다”고 외친다. 주류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니치에서 눈을 돌려 기업 및 조직, 사회 모두 니치적 시선과 성과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게 변한 환경을 드러내 분석한다. 저자는 이런 변화의 중심에 대중, 즉 기존 중간층의 소멸, ‘획일적 대중’에서 ‘잡식성 대중’으로의 변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모든 것을 하려는 기업과 조직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대상이 돼 퇴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논리를 촘촘히 엮어가는 여러 기업의 사례와 다양한 이론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저자는 HBO를 대표적인 ‘니치버스터’로 꼽는다. 미국인의 시선을 독점하던 CBS NBC ABC 등과 스포츠 생중계·라이브쇼 채널에 그럭저럭 묻혀 있던 HBO는 할리우드 영화 개봉과 스포츠 경기, 콘서트, 스탠드업 코미디 등을 생중계하면서 탈출구를 모색했다. 1975년 10월1일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마닐라의 전율’을 첫 위성중계하며 주가를 올렸다. 이후 1999년 1월 첫 방영된 ‘소프라노’와 이보다 1년 전 나온 ‘섹스 앤 더 시티’ 등이 명품 드라마로 자리를 굳혔다.

제약계에도 니치버스터가 많다. 미 매사추세츠의 젠자임은 5000명의 고셔병 환자를 위한 치료제 세레자임을 개발해 2008년 한 해 12억4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2010년 제약업계 니치버스터 시장은 660억달러 규모로 전체 시장규모의 7~8%를 차지했다.

몰스킨은 전 세계적으로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가진 기업으로 유명하다. 1년에 1000만권의 노트를 판매하는 몰스킨은 21세기 아방가르드와 관련된 예술가와 작가들이 같은 종류의 노트를 사용해 스케치를 하고 초고를 작성했다는 데 착안해 성공을 일궜다. 종교집단에 가까운 추종자를 양산하고 있는 애플도 마찬가지다.

이와 달리 ‘중간층의 덫’에 걸린 많은 기업들은 하릴없이 사라지거나 어려움에 처했다. 1990년대 후반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 소매점으로 자리매김한 갭은 젊은 쇼핑족을 겨냥한 신생 브랜드들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1970년 미국 최대 소매업체 시어스 로벅은 2004년 9위로 떨어졌고, 2위였던 JC페니는 14위로 주저앉았다. 똑같은 자동차를 모델명만 바꾸는 이른바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포드를 제쳤던 GM이 2009년 무너진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며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갈고 닦는지에 따라 생존이 결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제품이 정말로 그만그만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할 수 있다”며 “보여주거나 말할 뭔가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신봉하는 진정한 청중을 찾고, 그들을 끌어들여 그것에 영양분을 공급하라”고 조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