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결혼후 '경력단절' 여성 190만명 "시간제라도 일했으면…"
정보기기 관리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황철호 씨(31)는 5개월째 홑벌이다. 아내가 석 달 전 출산을 앞두고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포기하면서 부부의 한 달 수입은 43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줄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기저귀값과 분유값을 제외하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16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을 하고 있다.

홑벌이를 하면서 부부 사이도 소원해졌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 황씨와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 사이에 말다툼이 잦아졌다. 황씨는 “돈도 돈이지만 나는 개인 생활도 없이 일만 해야 하는 생활이 버겁고, 아내는 아내대로 집에서 아이하고만 지내는데 우울해 한다”고 말했다.

◆일하지 않는 기혼여성 408만명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배우자가 있는 1162만 가구 중 홑벌이 가구는 43.6%인 491가구에 달했다. 맞벌이 가구(507만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 홑벌이 가구를 앞질렀지만 여전히 많은 수준이다.

홑벌이 가구 중 80% 이상은 남자가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15~64세 기혼 여성 986만명 중 일하지 않는 여성이 408만명에 달한다.

홑벌이 가구 중 상당수는 팍팍한 가계살림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은 가계 생계를 홀로 책임지느라 허리가 휜다. 한 사람만 돈을 버는 홑벌이 가구의 소득은 맞벌이에 비해 크게 뒤진다. 홑벌이 가구의 지난해 3분기 월평균 소득은 335만5073원으로 맞벌이 가구(486만8055원)보다 150만원가량 적었다. 홑벌이 가구들은 특히 교육비나 연금 보험 등 미래를 대비하는 준비에서는 맞벌이 가구의 절반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다.

육아를 전담하기 위해 일까지 그만둔 아내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두 살 자녀를 키우는 홑벌이 가구의 원우정 씨(31)는 “남편 월급 200만원 중 기저귀와 분유값으로 30만~40만원, 아이 보험료로 30만원, 접종비 등 병원비로 10만~20만원을 쓴다”며 “매달 적자를 보기 때문에 노후 준비는커녕 외식이나 문화생활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력단절은 경제적 손실

홑벌이 가구의 상당수 아내들은 결혼 전후로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경력단절’이 생겼다. 그 숫자는 190만명에 이른다.

여성은 20대 고용률이 59.2%로 남성(58.2%)과 비슷하다. 하지만 출산·육아 시기인 30대에는 고용률이 54.5%로 떨어진다. 같은 연령대 남성(90.3%)과 큰 차이가 벌어진다.일을 포기한 여성들 가운데에는 자녀를 자신이 키우고 싶어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자녀를 하루종일 안심하고 맡겨둘 곳이 없거나 출산·육아 휴직이 안 돼 집에 들어앉는 여성들이 더 많다.

전문가들은 2017년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노동 참여는 경제성장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실제로 한국의 잠재성장률 제고 방안으로 ‘여성들의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일과 가정생활의 부담을 균형 있게 나눠지도록 하는 데 일자리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찬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며 “경력이 단절된 고학력 여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