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계부채 900조 나라도 거덜난다
가계부채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1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9월 말 기준으로 892조원에 달했다고 한국은행이 지난 4일 발표했다. 늘어나고 있는 빚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인해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5%보다 높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58%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2003년 카드대란 및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당시와 비교할 때 매우 높은 수치다.

가계부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가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현재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단기 변동금리를 택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증가된 이자부담으로 인해 대출 가계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가계에서 시작된 부실은 금융시스템 전반에 전이되고, 이는 ‘도미노 현상’처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일어난 저축은행 사태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문제다. 이런 사태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가계부채는 금융 시스템의 문제와 겹치면서 금융회사와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부실과 붕괴를 가져온다. 국가의 근간인 가계가 흔들리고 금융시스템마저 쓰러진다면, 실물경제에까지 파급을 미쳐 국가경제 전체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저축감소 역시 가계 부채 급증에 따른 문제점 중 하나다. 저축률이 낮아지면 빚을 갚을 여력이 없어지고, 가용 소득이 줄어 다시 부채가 증가한다. 증가된 부채는 다시 저축률을 낮추게 되고 이는 가계가 빚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2010년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2.8%로 OECD 평균인 7.1%보다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 부채의 악순환은 단순히 가계 측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정 수준의 저축이 없으면 투자와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 가계부채 심화에 의한 저축률 감소가 결국 국가경제 성장에도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처럼 가계부채는 그 부정적인 파급력이 크고, 영향을 미치는 분야도 다양하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가계부채 수준을 낮추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금리를 빠르게 올려 가계부채를 줄이려는 방법은 오히려 부채의 부실화를 부채질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리스크 관리를 통해 가계부채 문제를 위험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별 가계들의 의식 개선도 요망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아 올바르게 자금을 운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금융회사 역시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말고, 대출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고 건전한 대출구조와 기준을 가지고 대출에 임해야 할 것이다.

더욱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은 빚을 갚을 수 있는 소득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출구조를 개선하고 규제감독을 강화하더라도, 가계가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소득으로 충당할 수 없다면 개별 가계의 부채 해결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 없어’ 대출을 선택하는 가계들이 줄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늘리고 물가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노력과 함께 안정적인 고용증진을 도모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