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UP 코리아 생산기술] (5·끝) "한국 제조업 퀀텀점프 하려면 정밀기계·엔지니어링 키워야"
한국이 '넛 크래커(nut-cracker)'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기술강국 일본과 추격자 중국 사이에 낀 호두(nut)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10년 새 한국은 강해졌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도 높아졌다. 롤랜드 빌링어 맥킨지 한국 대표(44)를 만나 한국 제조업의 현 주소와 미래 '퀀텀점프'를 이룰 방안을 들어봤다. 빌링어 대표는 "현재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일본과 비슷하고 중국보다는 많이 앞서는 수준으로 올라섰다"면서도 "그러나 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정밀기계 ·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강소기업을 키워야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제조업이 강해졌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의 제조업은 1990년부터 글로벌 경제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해왔다. 20년 전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맡으면서 저비용,고유연성,적정 수준의 품질을 갖췄던 게 지금의 경쟁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

▼중국,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어떤가.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자본집약적 산업에선 단연 앞서고 있다. 엔지니어들이 공정관리 기술 면에서 뛰어나고 일본 기업과 달리 전략적 관점을 갖고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 등이 한국 기업의 강점이다. 자동차 등 조립산업 생산성도 일본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

▼뒤처지는 분야는.


"정밀기계 · 엔지니어링 쪽이다. 반도체 장비 등에선 독일 일본보다 한국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오랜 경험과 특화된 기술을 갖춘 중소기업이 부족한 탓이다. 독일처럼 길드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한 데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

▼한국 정부도 뿌리기술 분야의 중견기업 육성에 나섰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우선 기업 성장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을 늘려야 한다. 또 중소기업이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 한국의 한 고객사에만 납품하는 것보다는 BMW 폭스바겐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기업가 정신을 인정하는 문화도 중요한 요소다. 미국처럼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

▼한국 제조업이 보완해야 할 점은.

"글로벌 아웃소싱이다. 삼성전자 등 대표기업만 봐도 '인소싱'(내부조달)은 잘 하는데 외부 제조 역량을 활용하는 '아웃소싱'에선 그렇지 못하다. 한국 기업들이 개별 공장의 생산효율을 높이는 마이크로한 경쟁력에서 앞서고 있지만 앞으론 아웃소싱을 통해 유연한 생산체제를 갖추는 매크로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

▼글로벌 아웃소싱은 '고용 없는 성장'과 내수 위축 문제를 낳지 않나.

"그에 대해 (우리도) 많은 스터디를 해봤다. 미국 기업들의 아웃소싱 전략이 고용에 미치는 충격을 분석했더니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국내 산업의 효율성이 좋아지고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 "

▼애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애플은 아웃소싱을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투자로 생산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엔 그런 모델이 없다. 산업구조가 점점 고비용 추세로 바뀌고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점을 감안하면 효율적 아웃소싱 모델을 갖춰야 할 시대가 올 거다. "

▼최근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수준은 어떻게 보나.

"소니는 지난 몇 년간 엔화 강세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아웃소싱을 대폭 늘렸다. 다른 일본 기업들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비용과 제품 가격을 많이 낮췄다. 만약 내가 한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라면 엔화와 원화의 상황을 바꾼다는 가정 아래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검토해볼 것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다. "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그동안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값싼 인건비에서 나왔다. 최근 매년 임금이 10%씩 오르고 있어 앞으로 인건비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기업의 생산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공산품 분야에선 계속 경쟁우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인건비 경쟁력을 감안할 때) 결국 한국 기업은 정밀기계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만약 중국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다면 한국 제조업은 어려워질 수 있다. "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한국의 제조업체(Korea's manufacturer)'와 '한국에서의 제조업(manufacturing in Korea)'이란 두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제조업체는 낙관적이다. 브랜드 경쟁력도 훌륭하고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포스코 두산 등 강한 기업도 많다. 제조 역량도 뛰어나 기술혁신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앞으로도 강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제조업'이란 측면에선 다르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기술력이 좋은 중소기업을 키워내지 않으면 한국의 제조업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

정리=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롤랜드 빌링어 대표는

맥킨지에서도 손꼽히는 아시아 지역 전문가다. 1991년 맥킨지에 입사해 2003년부터 5년간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운영 컨설팅 리더로 일했다. △1965년 독일 출생 △뮌헨대 경영학과 졸업 △뮌헨대 재무관리학 · 경제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경영학 박사 △맥킨지 입사(1991년) △맥킨지 아 · 태 기업운영 컨설팅 리더 △맥킨지 한국 대표(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