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어느 나라나 생활필수품 관련 산업은 독과점적인 모습을 갖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다양하게 차별화된 고급 상품들을 만들고 팔기보다는 모두들 쉽게 사고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상품을 대량생산해 판매해야 하는 특성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독과점적 속성으로 생필품 가격은 생각보다 늘 비싸게 매겨지게 마련이다. 더 싸게 팔 수도 있는데 판매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비싼 가격표를 붙여 초과이윤을 얻는 듯 싶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정부가 생필품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판매자 간 시장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중단기적으로 이 방법을 통해 효과를 보기는 매우 어렵다. 워낙 독과점적 구조와 관행에 익숙해진 경제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때그때 여러 채널을 통해 가격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산업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현실에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물가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근본적 한계성을 갖는 만큼 실현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생필품가격을 합리적으로 안정시키려면 다른 제3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 소비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한 소비자가 판매자의 봉이 되지 않음은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소비자의 1차적인 자격조건은 가격과 품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 알아야만 끝없이 좋고 싼 물건을 추구할 수 있고,그래야 판매자들은 더 좋고 더 싼 물건을 공급하려고 서로 싸우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경쟁의 결과로 가격은 합리적인 선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재정부와 소비자보호원이 시행한 생필품가격정보제공 서비스는 시장기능에 입각해 전략적으로 생필품가격을 안정화시키려는 정부시책의 첫 출발이라고 판단된다. 이 뜻있는 시도가 더 큰 성과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병행돼야 한다.

첫째,가격정보 제공과 함께 일종의 사회 마케팅 프로그램을 시행해 소비자가 상품군마다 단위가격을 얻고 단위가격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단위가격에 맞춰 가장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지출이 줄어들고 삶의 질도 유지되는 효과가 나온다. 나아가 이렇게 단위가격 구매행위가 촉진된다면 판매자는 더이상 의미없는 제품차별화 시도를 중단하고 이로 인한 가격 인상도 자제하게 된다. 물론 판매자 간 가격경쟁은 더욱 가열화될 것이다.

둘째,소비자 가격뿐만 아니라 공장도 또는 도매 가격 정보도 제공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유통마진이 밝혀져 정보의 비대칭성에 입각해 이뤄지는 불공정 행태가 제어될 수 있다. 물론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지배적 판매자나 영세 판매자 모두 힘을 합해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사적 상거래 계약이 사익적으로나, 공익적으로 모든 경제주체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계약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상거래 당사자 간에 공유되는 때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다. 또한 이렇게 돼야 시장경쟁이 촉진돼 궁극적으로 소비자뿐만 아니라 영세 판매자에게도 더 큰 이익이 갈 수 있다.

생필품 가격정보 제공의 의의는 시장기능에 입각해 소비자를 강하고 똑똑하게 만들고 판매자의 독과점적 가격행태를 제어하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가격정보제공정책은 시장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생필품가격정보제공이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국가 공공서비스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현용진 < KAIST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