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시장 '폭탄 돌리기' 주의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인한 '풍선 효과'로 갈 곳 없는 돈이 수도권 아파트 분양권 시장으로 몰려 이상과열 징후를 보이고 있다.

8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 동작구 본동에서 공급된 '래미안 트윈파크(총 523세대)'의 분양권이 6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지하철9호선 노들역에서 가까운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84㎡형(기준층)을 기준으로 7억4000만~7억6000만원.프리미엄까지 합쳐 아파트 한 채 가액이 8억원을 넘어섰다.

인근에 있는 같은 크기의 본동 울트라 아파트(옛 유원아파트) 값이 6억원을 약간 상회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2억원이나 비싸다. 본동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층과 향이 좋은 아파트는 프리미엄 호가가 1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본동에서 가까운 흑석뉴타운에서 분양된 '흑석5구역 센트레빌(총 655세대)'도 마찬가지다.

전용면적 84㎡형의 분양가가 6억9000만원(3.3㎡당 2090만원)에 달해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지만 최근 프리미엄 1억5000만원에도 거래가 이뤄졌다. 호가는 2억원에 이른다.

경기도 남양주 별내지구에서는 '분양권 폭탄돌리기'로 인한 투자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

별내지구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지난 9월 분양된 '별내 아이파크(총 753세대)'의 경우 초기 프리미엄이 3000만~4000만원씩 붙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1000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매물이 나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분양권 시장이 이처럼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은 작년 11월3일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이 투기지역에서 해제돼 민간택지에서의 전매가 자유로워진 데다 최근 정부가 강화한 DTI 규제에서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용면적 85㎡형의 래미안 트윈파크 아파트 1채를 프리미엄 6000만원을 주고 산다고 하면 계약금(분양가의 10%) 7600만원에 6000만원을 얹어 1억3600만원만 내면 된다. DTI규제를 받지 않아 중도금부터 은행에서 빌릴 수 있다. 초기 투자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을 악용해 중개사끼리 서로 사고팔아 가격을 높이는 '호가 부풀리기 작전'을 쓰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양권 투자알선 전문가는 "최근 DTI 규제로 인한 풍선 효과까지 겹쳐 갈 곳 없는 돈이 분양권 시장으로 몰려드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분양권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업자들조차 래미안 트윈파크 같은 곳은 위험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본동 근처에서 일하는 중개사들도 '폭탄 돌리기'의 현실을 인정했다. 노량진역 인근에서 영업 중인 B공인 관계자는 "DTI 규제로 기존 아파트 및 재개발 지분 거래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나마 먹고살 길은 분양권 시장밖에 없다"며 "앞으로 실제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분양가 단지에서 프리미엄이 형성되는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신규 분양 단지의 분양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영 스피드뱅크 분양팀장은 "최근 재개발단지에서 나오는 신규 물량이 '고분양가 책정→청약 후 프리미엄 형성→더 높은 분양가 책정'이라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이 같은 폭탄 돌리기로 인한 피해는 결국 나중에 입주할 실수요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