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되는 행위다. "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표현대로 우리는 독서를 통해 각각의 생각을 키워간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욕망을 주는 것뿐인데도 우리는 작가가 답을 가르쳐 주기를 기대한다. 그 욕망이란 '작가의 예술적 노력으로 완성된 지고의 미를 관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떠오를 수 있다.

미국 터프츠대 아동발달학과 교수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에서 독서와 뇌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는 "애초에 인간의 뇌는 독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이 문자를 읽고 그 안의 상징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뇌 회로의 연결이 필요한데,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발전시키는 와중에 뇌가 기존 회로를 재편성해 이를 해독하는 쪽으로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문자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뇌가 독서에 맞춰 진화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같은 표의음절문자에 속하는 고대 수메르어를 읽는 사람과 중국어를 읽는 사람의 뇌는 비슷하게 움직인다. 이런 문자는 물체 인지에 사용되는 후두와 측두의 주요 부위,좌 · 우뇌에 있는 시각영역을 넓게 활성화시킨다.

반면에 '세종대왕이 창제한 완벽한 문자체계'(저자의 표현)인 한글이나 알파벳처럼 음소문자를 쓰는 사람들은 뇌의 측두인 두정부 주변이 특히 활성화된다.

그런데 남자 아이는 왜 여자 아이보다 더 늦게 글을 깨칠까. 그것은 뇌신경의 통합을 촉진하는 지방질 피복 수초가 늦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다섯 살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 독서를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경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또 난독증 연구가인 저자의 독특한 관점으로 이어진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과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천재적인 창의성을 발휘한 인물들이지만 공통적으로 난독증을 겪었다. 이들이 왜 독서에 어려움을 겪었을까.

저자는 "뇌가 독서에 적합한 회로를 타고나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난독증"이라고 말한다. 난독증을 겪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뇌에 구조적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독서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예술이나 지형 인지,건축 등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재주를 발휘하는 천재들이 글을 읽지 못하면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소크라테스가 '문자 언어의 확산'을 비판한 이유도 그렇다. 양방향 대화를 통한 지식의 고양을 중시했던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차단하고 암기의 가치를 훼손하는 훼방꾼'으로 문자를 대했다.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컴퓨터 게임과 디지털 영상에 빠진 아이가 문자를 도외시할까 걱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디지털을 피하려고 무조건 책을 떠안기는 '기능적인 독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마따나 책읽기가 인간의 뇌를 재편성한 것처럼 정보기술의 발달은 뇌를 또 다른 방식으로 재편성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읽기'와 '생각하기'의 상보관계다.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고 두루 섭렵하면서 '초월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 것이 '책 읽는 뇌'의 최고 업적이기 때문이다. 2007년 퍼블리셔스위클리 논픽션 부문 최고의 책.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