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메이저영화사인 '20세기폭스'는 요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30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하는 대작 '엑스맨 탄생-울버린'미완성본이 최근 인터넷에 유포된 까닭이다.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가 사전 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BI(미 연방수사국)는 제작진이 콘텐츠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메이저들의 이익 단체인 미국영화협회(MPAA)도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저작권 보호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영화계의 고민은 이보다 훨씬 크고 깊다. 인터넷을 통한 불법복제가 일상화되면서 영화산업도 음반산업의 전철을 밟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3~4년 전만 해도 영화 한편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 데 4~5시간 걸리던 것이 이제는 5분도 채 안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영화 관객은 정체 내지 소폭 감소하고,지난해 영화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 44%를 기록했다.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2006년 영화 불법유통 시장 규모는 합법 시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6090억원에 달했다. 홈비디오(DVD 포함) 시장은 2004년 6500억원에서 2006년 3280억원,지난해 2224억원으로 급속 위축됐다.

인터넷 웹하드에서 영화를 무료 혹은 100~200원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어 7000원짜리 극장 티켓이나 1만원짜리 DVD를 구입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영화 소비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응답자의 48%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와 업계의 안이한 자세에서 비롯됐다. 기술 개발의 속도에 맞춰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일본 음반산업이 건재한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1990년대 말 한국이 인터넷 다운로드 기술 개발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동안 일본 정부와 관련업계는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2년간 서비스를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시간을 벌어놓은 뒤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제 정비와 대 국민 홍보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구멍가게 주인만 있지,비즈니스맨이 없다"는 자조섞인 말이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참으로 뒤늦었지만 이달 초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불법복제물을 자주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에 대해 최장 6개월까지 서비스 정지를 명령하고,헤비업로더의 개인 계정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물론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는 저작권 침해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다. '해적질은 범죄'란 사실을 온 국민이 인식해 자발적으로 중단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도 병행해야 한다. 극장이나 매스미디어,정규 교과서 등을 통해 '불법복제는 범죄'임을 적극 알릴 때 기존 불법 복제자 중 절반 정도를 합법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저작권위원회 등 정부 기관들이 이와 관련해 책정한 올 홍보 예산은 5억8000만원에 불과하다. 일개 중소기업 홍보비보다 적다. 때마침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발전기금 중 올해 사업비 508억원의 예산 계획을 짜고 있다. 화근을 도외시한 채 다른 분야를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공산이 크다. 정부 관계자가 귀 기울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