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맞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취한 조치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기준금리 결정과 공개시장 조작 등 통상적인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지난해 9월15일(현지시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자 FRB는 환매조건부 채권 매매 방식으로 700억달러의 긴급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고 파산 위기에 몰린 보험회사 AIG에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FRB에서 돈을 빌릴 때 담보로 맡길 수 있는 채권의 종류도 투자등급의 모든 채권으로 확대했다.

응급 처방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계속되자 지난해 10월 FRB는 기업어음(CP)을 매입해 자금난에 처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형식상으로는 FRB가 특수목적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에 돈을 빌려줘 그 돈으로 CP를 사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중앙은행이 자금난에 처한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금리 인하도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FRB는 지난해 10월에만 연방기금 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1.0%포인트 내렸고 12월에는 미국 통화정책 사상 최저인 0~0.25%까지 인하했다. 불과 두 달 사이에 연방기금금리는 2%에서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스위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과는 통화스와프 상한을 일시적으로 없애기로 하고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등 개발도상국과는 새롭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문제는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FRB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적 완화 정책이란 금리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장기 국채와 자산담보부증권 등을 중앙은행이 매입함으로써 금융회사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뜻한다. 경기침체기에 중앙은행이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집어든 셈이다.

양적 완화 정책은 FRB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장기 국채 매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해 처음으로 공식화됐고 지난달 28일에는 "장기 국채를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다 강한 표현으로 나타났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을 막겠다"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의 말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