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인 엄마를 둔 희원(17·경기 안산)이는 지난 4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엄마의 나라'로 떠났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그곳에서 마친 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다.

희원이 언니는 "전부터 학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몽골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엄마가 한국인과 재혼하면서 한국인이 된 근우(21·서울)는 이런 저런 이유로 6년간이나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뒤늦게 올해 전문계 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했지만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자격증 하나 제대로 따낼 수 있을지,졸업 후에는 당당한 한국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국제결혼 급증으로 늘어난 피부 색깔이 다르고 말씨와 정서가 이질적인 혼혈아들은 물론 수많은 외국인 불법 체류 근로자 아이들의 사회 동화 및 정착 문제가 한국사회에 전대미문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빠른 경우에는 벌써 사회 진출을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내부 정서는 순혈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정부의 관련 정책도 '제로지대'나 다름없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이미 100만명 수준으로 잘못하다가는 선진국들이 경험한 인종갈등·문화충돌의 비극이 빚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법무부,통계청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전국 초·중·고교에 다니는 한국 국적의 국제결혼 가정 자녀는 1만3000명 정도로 한 해 전에 비해 5000명 이상 늘었다.

전북 등 일부 농촌지역 초등학교의 경우 그 비율이 10% 안팎까지 올라온 상태다.

앞으로 입학할 학생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1995∼2002년 연간 1만∼1만5000건 수준이던 국제결혼이 2003년 2만5000여건,2005년 4만3000여건 등으로 급증한 만큼 출산도 늘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고교생 수도 지난해 1200명 정도에서 올해 2000명 이상으로 늘어 4∼5년 뒤부터는 이들의 취업 문제가 본격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녀 문제는 더 심각하다.

취학 연령대인 7∼18세 외국인 거주자는 줄잡아 1만7000명을 웃돌지만 외국인학교 등에 재학 중인 학생은 8300여명뿐.나머지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배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방치된 이들 대다수는 불법 체류 근로자의 자녀들이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조영달 서울대 사범대 교수(사회교육과)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잘 보살피면 아시아 각지로 경제·사회적 외연을 넓히는 인적 자산화할 수 있지만 방치할 경우 2005년 프랑스 저소득층 이민자 폭동의 예에서 보듯 폭발물을 안고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채소가 지닌 특질을 유지한 채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내는 '샐러드 효과(salad bowl effect)'처럼 사회가 발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