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실현에 필요하다면 유연성 가져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7일 "저는 이제 우리 진보가 달라지기를 희망한다"며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필요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기고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글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유럽의 진보진영은 진작부터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노선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유연한 진보'라고 붙이고 싶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자신의 이념성향에 대해 "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일부 정치언론이 말하는 그런 좌파도 아니다"면서 "저는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무슨 사상과 교리의 틀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하는 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시합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했고, 한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다"며 "그런데 유신과 5공은 저에게 새로운 사상에 접할 기회와 방황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기도 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참여정부의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우스개 표현마저 심각한 논란이 되는 현실은 비극"이라며 "이 말은 참여정부를 교조적 사상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비꼬아서 쓴 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니 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저 때문에 진보진영이 다음 정권을 놓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정권에 대한 지지가 다음 정권을 결정한다면 지난번에도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일도 없고, 또한 대세를 잡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민주 혹은 진보 진영이 성공하고 안 하고는 스스로의 문제이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저에게 다음 정권에 대한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차라리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진보진영이 행동하기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다"며 "진보진영이 무엇을 잘해서 정권을 잡을 일이라면 참여정부 시대에도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사적 이익을 보겠다는 말이라면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세력 무능론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단히 부당한 논리"라며 "지난 20여년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민주진영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저는 지지도가 낮다고 하여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대두되는 최근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다"면서 "(그러나) 민주세력의 공과(功過) 역시 시대적 요구를 중심으로 비교의 기준과 사실적 논거를 갖고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