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유행어는 특히 그렇다. 생뚱맞은 듯해도 들여다 보면 그것이 통용되는 세대와 시대의 특성을 잘 대변한다. 요즘 젊은 네티즌들이 자주 쓰는 '안습''GG''낚였다'도 그렇다. 안습은 '안구에 습기차다'의 약자로 눈물을 의미한다. GG는 '졌다'는 뜻. 온라인게임에서 불리한 사람이 중간에 '굿 게임(Good Game)'을 치고 나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약어와 게임용어가 판치는 인터넷 세상의 산물이다.

'낚였다'역시 인터넷에서 제목만 보고 클릭한 내용이 엉터리였을 때를 비꼰데서 생겨났다는 게 통설이다. '속았다''물렸다'의 동의어다. 속고 물리는 일이 워낙 많아서인지 '바다 이야기' 탓인지 '낚였다'라는 말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할인쿠폰 믿고 식당에 갔다 해당메뉴가 없어 제값 다내야 할 때,예고편에 혹해 봤는데 기대한 장면은 안나올 때 모두 '낚였다'고 한다.

이 정도는 '에잇' 정도로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서울 강남 집값 꼭 잡는다''강남북을 균형있게 개발한다'는 장담 내지 공언을 믿고 기다리다 강남은커녕 서울과 경기도 어디서도 내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된,아니 전세조차 구하지 못하게 '제대로 낚인'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북이나 경기도 일대엔 평당 1000만원 미만 짜리 아파트가 적지 않았다. 뉴타운 덕(?)에 여기저기서 수십년 동안 꼼짝 않던 집값이며 땅값이 확 올랐지만 평당 600만∼700만원짜리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게 판교에 이어 은평 뉴타운 분양가까지 평당 1500만원이 넘자 하루아침에 다락같이 뛴다고 한다. 조금만 더 참고 모으면 내집을 장만하리라,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리라 꿈꾸던 이들에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강북에 집 가진 사람의 경우 "그래봤자 강남의 절반도 안되는데"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채 이상이면 모를까 한 채뿐이면 내 집값이 올라도 다른 집값이 다 오르면 좋을 게 없다. 얼핏 재산이 불어난 것 같아도 집을 팔아봤자 같은 규모의 집을 사기 어려운 건 물론 늘려가기는 더 힘든 까닭이다.

'균형 발전'에 낚인 게 어디 이들 뿐이랴. 지방마다 온갖 이름의 개발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방방곡곡 땅값이 몽땅 올라 언젠가 도시를 떠나 시골 텃밭이라도 가꿔보려던 소시민의 꿈을 낚아챘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은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 땅값만 오른 게 아니니 팔거나 보상을 받아도 옮겨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이처럼 '꼼짝없이 낚였다'여기게끔 만든 정부 당국자들이라고 작정하고 일을 벌였을리 없다.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한 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들 또한 낚였으리라는 얘기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낚은 사람이 따로 없는데 온국민이 죄다 낚여 파닥거리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자면?

흙탕물을 맑게 하려면 자꾸 뭘 넣기 보다 일단 가만히 둬야 한다. 급하다고 서두르면 일이 더 꼬이게 마련이다. 수습한답시고 새 정책을 고집하고 밀어붙이기 보다 지금이라도 차분하게 일의 앞뒤를 돌아보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바꾸는 게 필요하다.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한다. 희망이 있는 곳엔 인내와 활력이 생기지만 희망이 사라진 곳엔 분노와 증오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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