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모두가 낚였다?
'낚였다'역시 인터넷에서 제목만 보고 클릭한 내용이 엉터리였을 때를 비꼰데서 생겨났다는 게 통설이다. '속았다''물렸다'의 동의어다. 속고 물리는 일이 워낙 많아서인지 '바다 이야기' 탓인지 '낚였다'라는 말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할인쿠폰 믿고 식당에 갔다 해당메뉴가 없어 제값 다내야 할 때,예고편에 혹해 봤는데 기대한 장면은 안나올 때 모두 '낚였다'고 한다.
이 정도는 '에잇' 정도로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서울 강남 집값 꼭 잡는다''강남북을 균형있게 개발한다'는 장담 내지 공언을 믿고 기다리다 강남은커녕 서울과 경기도 어디서도 내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된,아니 전세조차 구하지 못하게 '제대로 낚인'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북이나 경기도 일대엔 평당 1000만원 미만 짜리 아파트가 적지 않았다. 뉴타운 덕(?)에 여기저기서 수십년 동안 꼼짝 않던 집값이며 땅값이 확 올랐지만 평당 600만∼700만원짜리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게 판교에 이어 은평 뉴타운 분양가까지 평당 1500만원이 넘자 하루아침에 다락같이 뛴다고 한다. 조금만 더 참고 모으면 내집을 장만하리라,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리라 꿈꾸던 이들에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강북에 집 가진 사람의 경우 "그래봤자 강남의 절반도 안되는데"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채 이상이면 모를까 한 채뿐이면 내 집값이 올라도 다른 집값이 다 오르면 좋을 게 없다. 얼핏 재산이 불어난 것 같아도 집을 팔아봤자 같은 규모의 집을 사기 어려운 건 물론 늘려가기는 더 힘든 까닭이다.
'균형 발전'에 낚인 게 어디 이들 뿐이랴. 지방마다 온갖 이름의 개발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방방곡곡 땅값이 몽땅 올라 언젠가 도시를 떠나 시골 텃밭이라도 가꿔보려던 소시민의 꿈을 낚아챘다. 그렇다고 시골사람은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 땅값만 오른 게 아니니 팔거나 보상을 받아도 옮겨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이처럼 '꼼짝없이 낚였다'여기게끔 만든 정부 당국자들이라고 작정하고 일을 벌였을리 없다.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한 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들 또한 낚였으리라는 얘기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낚은 사람이 따로 없는데 온국민이 죄다 낚여 파닥거리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자면?
흙탕물을 맑게 하려면 자꾸 뭘 넣기 보다 일단 가만히 둬야 한다. 급하다고 서두르면 일이 더 꼬이게 마련이다. 수습한답시고 새 정책을 고집하고 밀어붙이기 보다 지금이라도 차분하게 일의 앞뒤를 돌아보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바꾸는 게 필요하다.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한다. 희망이 있는 곳엔 인내와 활력이 생기지만 희망이 사라진 곳엔 분노와 증오만 남는다.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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