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두번째로 큰 기계공학과를 10년이나 맡아 꾸려왔습니다.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압니다. KAIST를 세계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정부건 기업이건 50억달러(5조원)만 KAIST에 투자하세요. 한국을 먹여살릴 인재를 책임지겠습니다."

서남표 KAIST 신임 총장(70)은 13일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30년 역사의 KAIST는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시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국에서 할 일은 다한 것 같고 남은 여생 한국에서 공헌할 일을 위해 KAIST행을 택했다"는 서 총장은 로버트 러플린 전임 총장의 사립화 구상에 대해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일본 도쿄(東京)대학이 사립화를 꾀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행태가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와 다름없이 정부에서 돈을 받고 있고 교수들도 그다지 참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립이든 국립이든 대학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사회나 교수들에게도 재정 확보를 위한 방안과 노력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KAIST 인재들이 모든 분야에서 설계를 잘하도록 교육시킬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국 기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가 목표를 설계하고 꾸려가는 힘이라는 게 서 총장의 생각이다. 그는 특히 KAIST도 목표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교수들이 논문을 잘 쓴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기초연구든 첨단 기술혁신이든 양극단 어느 한 분야를 집중해야 교수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나 지적 자극이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도 교수의 역할입니다."

이런 선상에서 그는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로는 좋은 대학을 만들 수 없다"며 "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야 하고, 이를 위해 실패해도 좋다는 연구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이 이제 여성의 브레인 파워를 활용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KAIST의 경우 여학생 비율이 50%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와 함께 여학생의 역할모델이 될 여성 교원 유치에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총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미국 MIT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 멜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70년부터 MIT 기계공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해왔다.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맡기도 한 그는 기계설계이론 저서만 7권을 낸 대표적 석학이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