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개정 사학법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학내 단체들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를 4분의 1 이상 포함시키라는 것으로 사립학교의 소위 지배구조를 뜯어고친 것이 논란의 발단이다. 언론에서나 사립학교에서나 기업에서나 동일한 수단과 목표를 갖는 지배체제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이 모두가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인다는 아름다운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사적(私的) 자치보다는 공적 지배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는 면에서 실은 전적으로 동일한 사안이다. 우리는 그것은 좌파적 책동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사적 영역에 대한 공적 개입'을 놓고 좌파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그렇게 부를 것인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누가 어떤 결정 과정을 거쳐 이사를 파견할 것이며 사외이사 혹은 학외 이사는 과연 무엇에 봉사할 것인가. 또 그것이 장기적으로 언론의 발전과 사학의 창달과 기업의 도약에 기여하기는 할 것인가 말이다. 파견되는 이사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하면 들러리요,열심히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투쟁의 연속이 될 판이다. 기업에 있어서는 대부분 사외이사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고 있다. 사외이사에 충원할 인적 자원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사측이 이사를 선임하도록 했으니 회사와 대립각을 세울 까닭도 실은 없다. 은행이나 공기업이라면 더욱 그런 경우다. 그래서 퇴직 공무원이나 관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교수들에게는 정말 이런 안성맞춤인 자리도 없다. 짭짤한 새로운 소득원도 되고 약간이나마 부지런한 교수라면 다양한 학문적 소재 거리를 확보할 수도 있는 양수겸장이다. 덕분에 다소의 번거로움만 감내한다면 서로 간에 그럭저럭 견딜 만한 관계로 발전해 간다. 사외이사가 때로 방패막이가 돼주기라도 한다면 말 그대로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다. 그러나 만일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도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간담이 서늘해지는 위험천만인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을 테다. 사학법이 위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언론법에서는 다행히도 이 부분이 삭제됐다. 신군부 대위들의 빨간 유성 펜이 연상되는 편집위원 제도라면 정말 질겁할 일이다. 결국 나치 괴벨스의 언론정책에 한치도 모자랄 것이 없는 꼴이 되고 말았을 테다. 괴벨스의 나팔들이 일제히 울려퍼지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립학교는 과연 어떤 모양이 될 것인가. 역시 가장 걱정되는 것이 전교조다. 전투적 노조가 경영에 개입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라는 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학교도 경영인 것이고 전교조는 강력한 노조임에 분명하다. 사학의 설립이념과 전교조의 교육이념에 차이가 난다면 마찰은 필연이다. 불행히도 이념의 차이가 크다. 학외 이사는 머릿수에서는 재단 이사 총수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교조와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은 곧장 최강이 될 테다. 이미 강단을 장악한 전교조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상황을 충분히 보아왔다.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며 APEC에 대한 지극히 편협한 사적(私的) 주장을 교단으로 끌어들이려던 전교조였다. 전교조가 만일 전교조적 이념의 확산을 원한다면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낸 다음 스스로 사립학교를 세우는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그 학교에는 또 다른 강력한 전교조가 생길 테고…. 공립학교가 전교조의 막강한 영향력에 이미 편입됐다면 이번 사립학교법은 그것을 사립의 영역에까지 확산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아무도 더 이상 사립학교를 설립하려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만 생기면 이를 핑계로 무조건 지배구조부터 바꾸려 드는 이 시대 좌파 원리주의자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