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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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에 사기당한 거 아닌가요."

지난해 반도체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이야기를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2021년 SK하이닉스가 인텔에서 인수한 낸드 사업부(현 솔리다임)가 적자를 이어간 결과다. 이 회사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투자하던 2019~2022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팔리지도 않고 비싼 HBM에 너무 집착한다"는 냉소를 받기도 했다.

시장의 냉대를 받았던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과 HBM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두 사업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의 '몸값'이 22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보다 60조원 이상 불어난 규모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낸드 자회사인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사업부)은 올 2분기에 흑자전환할 전망이다. 솔리다임은 올 1분기에 매출과 순손실로 각각 1조8503억원, 149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67.2% 늘었고, 순손실은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 2분기에는 흑자전환이 예상된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11조원가량에 중국에서 낸드 공장을 운영하는 솔리다임을 인수한 바 있다. 하지만 낸드 가격이 폭락하면서 솔리다임은 지난해에만 4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냈다. 그러자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악의 인수합병(M&A) 거래'라는 비판도 속출했다.

지금 분위기는 판이하다. 세계 곳곳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구축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저장장치인 '기업용 SSD(eSSD)'의 판매가 급증한 영향이다. 솔리다임은 낸드를 바탕으로 eSSD를 생산하고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증설이 이어지면서 eSSD 부족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며 "솔리다임 M&A를 바라보는 눈이 단숨에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HBM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 제품(HBM3E) 유일하게 납품하고 있다. 올 하반기 엔비디아가 내놓는 AI 가속기 블랙웰(B200)에는 HBM3E가 8개 탑재된다. 로이터는 "삼성전자는 HBM3E 8·12단 제품이 엔비디아의 납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측이 즉각 "테스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하기는 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압도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HBM 개발팀을 해체하는 등 이 사업에서 철수했다가 최근에 부랴부랴 팀을 재구성한 바 있다. 당시 HBM은 너무 고사양 제품에 가격도 비싸서 사업성이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삼성전자가 사업을 접은 반면 2013년 업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SK하이닉스는 투자를 이어갔다. "돈 안 되는 사업을 한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생성형AI 시대가 열리자 SK하이닉스의 끈기는 재평가받고 있다. AI가속기 필수품인 HBM 판매량이 폭증하면서 SK하이닉스 실적과 기업가치도 뜀박질 중이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31만원으로 설정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지금보다 55.2% 늘어난 225조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