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이행의무가 문제된 두 번째 사례다. 최근 성남의 오피스텔을 매도한 어떤 의뢰인의 사연인데, 이 오피스텔에는 매매계약 당시 임차인이 있었는데 계약기간종료를 불과 1주일 앞두고 있는 상태였고, 이 의뢰인은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바로 당일에 이 오피스텔 임차인에게 매매계약사실을 언급하며 임대차계약의 해제를 통보했다. 이 임대차계약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소정의 환산보증금 이상이어서 일반민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해제하는 것은 당연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연장을 원하면서 생겼는데, 이 임대차계약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계약이다보니 기존의 임대차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면 새로운 건물주가 될 매수인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없었다. 이 임차인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서 매수인과 임대차계약연장을 위해 협의를 시도했는데, 처음에는 임대차조건에 관해 무난히 합의되는가 싶더니 매매대금잔금을 지급하기 직전에 와서는 세부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임대차계약체결이 결렬되고 말았다. 이에, 매매계약내용에 따라 원칙적으로 오피스텔의 점유를 매수인에게 넘겨줘야 할 처지에 있는 매도인인 의뢰인으로서는 임차인에게 잔금기일까지 오피스텔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는데, 뜻밖에도 임차인으로부터 거절당하게 되었다. 이 임차인 주장은, ‘비록 구두상이지만 매수인과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비워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수인주장은 전혀 달랐다. 조건을 협상하다가 결렬되었으므로 당연히 임대차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지도 않았는데 말도 않되는 억지를 부리는 이런 임차인과는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가 않아 이 임차인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시했다. 이런 과정 끝에 결국 의뢰인은 매수인으로부터 ‘원칙대로 잔금기일까지 임차인을 명도해달라’고 요구를 받게 되었는데, 문제는 매매계약의 계약금만 하더라도 무려 1억원이어서 자칫 매수인이 매도인의 명도의무위반을 주장하며 계약해제를 요구할 경우 받은 매매대금을 전부 돌려주는 것은 물론 위약금 1억원까지 지급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더구나, 매매계약체결 이후 부동산경기가 계속 위축되고 있던 터라 이런 상황을 기화로 매수인이 매수할 마음을 바꿀 가능성까지 예상되었다. 다급해진 의뢰인은 임차인을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며 소정의 이사비까지 부담할 용의도 내비치며 명도를 부탁했지만 여의치않았다. 이에 의뢰인은 전략을 바꾸어서 매매계약에서의 위약금 1억원까지 언급하면서 임차인에게 향후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는 취지로 통고서를 두 번이나 보내 부담을 주려고도 했지만, 임차인은 ‘마음대로 하라’면서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약속한 잔금기일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고, 매수인은 다른 곳에서 법적으로 자문을 구했는지 부동산중개업자까지 대동한 자리에서 수표1장으로 매매잔금을 준비해온 것을 보여주며 임차인명도를 독촉하기에 이르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매매계약해제를 전제로 지급한 매매대금과 위약금 1억원을 합한 금액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송과 가압류청구를 매수인이 준비한다고 했다.
이에 극도로 예민해진 의뢰인은 일차로 다른 법률사무소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는데, 다른 법률사무소로부터는 ' 이미 매수인이 잔금까지 준비해서 매매계약해제를 한다는 절차를 밟은 이상 임차인을 내 보내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낙심해서 필자의 사무실을 들르게 되었다고 했다.
이 사건해결의 선결과제는, 임차인과 매수인간의 협의끝에 과연 임대차계약이 새로이 체결되었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임차인 주장대로 매수인과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었다면 매도인의 명도의무 위반을 이유로 매수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었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향후 재판에서 판단될 수 있겠지만,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다면 일단은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서면이 아니라 구두상으로도 임대차계약이 체결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법률문제에서 더구나 기존 임대차계약을 변경해서 절충하는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계약체결은 서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서면화되지 않았다면 그 이전의 과정은 계약체결하기 이전의 협의나 절충과정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처럼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은 것이라면, 임차인을 명도해야 할 책임은 일단 매도인인 의뢰인에게 돌아오게 되는데, 임차인명도의무위반을 이유로 이미 매매계약이 해제되었는지 여부가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 다른 법률사무소의 견해처럼 이미 매매계약이 이미 적법하게 해제되었다면 매매계약을 이행하는 목적에서의 임차인명도는 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매매계약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앞으로 매매계약이 해제되기 이전에 임차인을 명도하게 되면 매매계약은 해제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이행될 수 있기 때문에 임차인명도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필자는 다른 법률사무소와는 다른 판단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직 매매계약이 적법하게 종료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다. 이 매수인은, 매도인의 명도의무에 대응하는 매수인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잔금지급의무의 이행제공은 제대로 해서 매도인을 이행지체상태에 빠뜨린 것은 사실이지만, 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이행최고를 한 다음 계약해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법적인 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직 계약이 해제된 상태는 아니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매수인이 대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를 제기하거나 가압류조치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의뢰인이 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계약해제를 위한 최고나 해제통고로 볼 수도 없었다.
이에 필자는 의뢰인에게 아직 매매계약은 해제되지 않았다는 희망을 심어주면서, 일단 당분간은 매수인으로부터 오는 연락은 일체 받지 말고 그 사이에 하시라도 빨리 임차인을 내보낼 필요가 있다고 자문하였다. 다시한번 임차인을 설득하고 또 부담줄 필요가 있었다. 한편, 이런 자문과정에서, 임차인 명도와 관련해서 의뢰인이 법적으로 결정적으로 미흡하게 처리한 점이 발견될 수 있었다.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점유하는 것이 불법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계약이 종료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임대인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의무제공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이 무단점유하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이 의뢰인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복잡한 법적인 분쟁의 와중에도 임차인의 명도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의 이행제공절차를 전혀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차인이 명도해주면 응당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더구나, 이사비까지도 줄 용의가 있었음) 보증금반환제공을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인데, 재판에서는 큰 결점이 될 수 있다. 결국, 보증금반환제공이 입증되지 못하면 임차인의 점유가 불법으로 판단받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 결과, 향후 임차인을 상대로 매수인에게 지급한 위약금 1억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제기될 경우, 특별손해, 인과관계 등을 따지기 이전에 가장 전제가 되는 임차인점유의 불법성이라는 점에서 의뢰인이 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소지가 크다.

필자는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일단 법적으로 필요한 보증금이행제공을 할 필요가 있고, 이 과정에서 법률사무소 직원이 함께 동행하면 임차인이 상당한 심리적인 위축을 받을 수 있어 합리적으로만 판단하면 예상외로 조속하게 명도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고 자문했다. 이런 자문에 공감한 의뢰인으로부터 이 사건처리를 위임받은 필자는, ① 매수인의 계약해제절차를 밟기 이전에 시급하게 명도가 처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일 특급우편을 통해 임차인에게 필자의 명의로 다시 한번 통고서를 보내게 되었는데, ② 통고서 도착이 예정된 이틀 후의 날짜에 의뢰인과 함께 필자의 법률사무소 사무원이 동행하여 보증금전액을 이행제공하겠다는 사실, ③ 이 날짜에 명도가 되지 않으면 명도를 지연함으로 인해 매매계약이 해제되어 매도인이 매매계약서상의 위약금상당의 손해를 입을 경우 이를 청구하겠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언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통고서상에 명시된 날짜에 필자의 사무실 사무원과 함께 의뢰인이 임차인을 찾아갔는데, 천만다행스럽게도 임차인은 그동안 강경한 입장을 바꿔 며칠 내로 명도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후 매수인도 임차인명도를 확인한 다음 마음을 돌이켜 나머지 잔금을 이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임차인 명도가 극적으로 해결됨으로 인해 무난히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사건의 경우, 사실 임차인이 법적으로 해박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사건 해결은 보증금을 이행제공하겠다는 등 법적인 용어를 구사하면서 변호사 명의로 통고서를 보낸데다가 임차인과의 만남의 현장에 법률사무원이 직접 동행하는 등 명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의 부담이 임차인의 피부에 와닿도록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판단되지만, 만약 임차인이 명도를 거부함으로써 사건해결이 원만히 되지 않아서 결국 임차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까지 갔더라면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이행제공이 법적인 도마위에 오를 수 밖에 없어 의뢰인이 큰 손해를 입을 우려가 컸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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