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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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발견과 발명의 길에서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열정에 가득 찬 신념으로 큰 성취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게 된다. 반면 수시로 결과를 예단하며 개인적 출세만 위해 속셈을 따지는 사람들은 결국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영화<마리 퀴리(Radioactive), 2019>에서 주인공은 지적인 강렬한 탐구심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져 세계사에 남을 업적을 만들어 내게 된다. 엄청난 고난의 과정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창조적 발견과 발명을 만들어 낸 불굴의 집념에 경외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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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요약>
폴란드에서 파리로 유학 온 마리(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성차별과 이방인이라는 편견으로 힘든 환경에도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미 위대한 반열에 선 과학자 피에르 퀴리(샘 라일리 분)와 학문적 인간적으로 교감하면서 역경을 극복할 힘을 얻게 된다. 부부가 된 그들은 비가 새는 헛간을 실험실 삼아 밤낮없이 연구하여 1902년 4월 20일 마침내 세상을 바꿀 새로운 물질인 라듐 0.1그램을 분리해 내는데 성공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피에르 퀴리가 음주 마차에 치여 47세에 사망하면서 마리는 두 딸을 양육하며 지독한 외로움과 열악한 실험 환경에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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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포인트>
A. 마리 퀴리의 세계사적 업적은?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후 막장과도 같은 환경 속에서 4톤이나 되는 피치블렌드라는 광물 분석을 통해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우라늄에 비해 엄청난 방사능을 가진 라듐을 발견하면서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여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남편 퀴리의 사망 후 혼자서 연구에 몰입하여 1907년 라듐 원자량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해 냈고 금속 라듐을 분리하는데 성공하면서 1911년 두 번째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리는 인체에 위험한 라듐의 오랜 연구로 결국 백혈병과 악성 빈혈에 시달리게 된다.
B. 전쟁으로 인한 마리의 행보는?
1914년 소르본 대학에서는 마리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라듐 연구소를 건립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해오자 라듐을 스위스로 옮겼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전쟁 중 장녀 이렌과 함께 부상자 치료를 위해 뢴트겐 투사기를 보급하는데 노력하였고 많은 부상자의 목숨을 구하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파리 의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다. 라듐 연구소는 이후 파스퇴르 실험소와 퀴리 실험소가 되었는데 마리는 퀴리 실험소 소장으로 프랑스의 화학 연구에 헌신하게 된다.
C. 마리 퀴리의 역경의 시간은?
남편 퀴리의 도움으로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여전히 학계에서는 이민자와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마리에 대한 비난이 계속된다. 또한 남편 퀴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던 퀴리는 다른 과학자와의 스캔들로 파리 시민들에게 비난당하며 그녀의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노벨상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그녀의 노력에 노벨상이 수여된다. 마리의 첫째 딸 이렌과 사위 프레데리크도 인공 방사능 발견 공로로 노벨화학상, 둘째 사위인 라부이스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마리는 역경의 시간을 통해 큰 보람을 찾게 된다.
D. 마리의 역사적 평가는?
마리는 계속된 방사능 물질의 연구로 몸이 극로로 쇠약해져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였지만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로 66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하였다. 사후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역대 위인(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한편 마리 퀴리가 염려한 대로 방사능의 잘못된 사용으로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로 큰 희생이 닥치기도 하였고 여전히 반지성적인 세력에 의해 자유를 위협하는 핵 전쟁의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E. 마리 퀴리의 인간적인 위대함은?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위대한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전쟁이 나자 노벨상 수상 메달까지 녹여 전쟁 기금으로 만들고자 하였고 상금도 전쟁 채권에 기부하였다. 라듐 분리에 대한 특허권도 포기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 자신은 빈곤한 삶을 살았다. 이미 방사능에 노출되어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1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에 뛰어들어 자신이 만든 구급용 차량에 엑스레이 진단 장치를 싣고 백만 명 이상을 촬영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엑스레이 진단을 통해 팔과 다리를 함부로 절단하는 비극을 없애는 등 진정한 희생정신을 통해 인간애를 실천하였다. 마치 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신이 대장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돌본 것과 같이 위대한 모습이었다.
출처: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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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마리 퀴리는 마치 석탄을 채굴하는 탄광 같은 열악한 실험실 환경 속에서 자신이 직접 광부처럼 엄청난 량의 암석들을 망치로 깨며 기적적으로 신물질을 발견하였지만 라듐 분리에 대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불치의 병인 암을 치료하는 등 획기적인 인류에 대한 봉사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녀는 <어떤 역경이 닥쳐도 어쨌든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라는 뜨거운 집념과 열정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세상을 바꾸는 발견과 발명을 한 후 본인은 만신창이가 되어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간 것이다. 지금 환경파괴와 전염병 창궐, 국가 간 이기주의로 인한 전쟁 등 복합 위기에 처한 지구촌에서 마리 퀴리같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노력과 인류애 정신이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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