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양구 사명산(1,198m).
2007년 늦여름 어느 날, 억수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올랐던 산,
2013년 초여름 말간 날, 땡볕에 온 몸을 내맡기며 다시 올랐다.

“국토의 정중앙,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
생태관광지, 청정 양구가 내건 모토이다.

올때마다 10년이 젊어진다? 그렇다면…
양구의 사명산, 백석산, 대암산을 다녀간 난 20대 청춘이네^^.

일요일 아침,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내달려 춘천 외곽을 스쳐지나
양구 파로호 가는 길목, 월명리에 닿은 시간은 09시 50분경.
월명리는 사명산 자락과 파로호 변에 자리한 두메산골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래도 양구 보단 나으리”
이처럼 인제·원통 사병들은 양구로 배치된 사병들을 위안 삼아 군대생활을 했다.
그만큼 양구는 최전방 군사지역이요, 멀고도 험한 오지였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다.
서울 출발 두시간 남짓, 사명산 자락에 닿았으니,
‘한반도의 오지’에서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탈바꿈 했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버스는 사명산의 북동쪽 들머리, 월명리 당골 입구에 산객을 부려놓았다.
길가에 세워진 등산안내판을 꼼꼼히 살폈다.
정상까지 5.1km, 정상에서 날머리인 웅진리까지 4.7km다.
뙤약볕 내리쬐는 농로를 따라 1.7km를 걸어가야 비로소 숲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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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엔 뱀딸기가 지천이다. 산딸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산딸기 삼매경에 푹 빠져 초입부터 일행들 걸음이 더디다.

본격 산길이 시작되자, 하나둘 등로를 이탈해 풀숲으로 기어든다.
곰취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호박잎 만한 곰취를 들고서 환호성이다.
호박잎을 들고 곰취라 해도 모를 만큼 난 산나물 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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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산 자락엔 온갖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한다.
금낭화, 노린재, 쥐오줌풀… 몇몇은 접사(接寫)에 여념 없다.
야생화 상식 역시나 博識 아닌 薄識 수준이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숲길을 따라 2.5km 걸어 올랐을까, 생뚱맞게 자동차 엔진음이 거칠게 들렸다.
이내 숲이 열리더니 사명산 허리를 가로지른 임도가 나타났다.
진홍빛깔 지프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멈춰섰다.

창문을 한 뼘만 내린 채 물었다. “어디서부터 올라왔냐”고.
더위에 지쳐 헥헥거리며 답했다. “월명리에서 올라왔다”고.

빙긋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창문을 닫고선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뭐가 궁금했어? 더운데 무슨 개고생이냐? 이거였어~ 이런 된장!’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안내팻말이 가리키는대로 임도를 따라 걸었다.
200여미터 걸어가니 다시 이정표는 숲속 길로 안내한다.
정상까진 아직도 2.2km나 남았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간간이 나무계단도, 밧줄구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이 가팔라지는만큼 호흡도 가빠져온다.
이쯤에서 땀도 훔칠 겸, 지친 몸도 가눌 겸, 배낭을 내렸다.
눈치를 긁은 山友가 배낭을 열어 살얼음이 버석거리는
막걸리통을 꺼내 눈웃음을 날린다.
오랜 산우라 이처럼 눈빛만으로도 통한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뚜렷하던 숲길은 고도를 높일수록 웃자란 수풀 아래로 숨어 걸음을 더디게 했다.
지난 어느 태풍에 꺾여지고 쓰러졌을 거목들도 수시로 길을 가로막았다.
드러누운 거목 위로 잡풀과 이끼가 무성하다.
그렇게 나목은 자양분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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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범벅이 되어 1,198m 사명산 산정에 닿았다.
6년 전 여름, 비안개의 심술로 조망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알아챘나?
파란 하늘은 엷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생색을 내고
발아래엔 東 소양호, 西 파로호가 선연하게 자태를 뽐낸다.
또한 첩첩 산군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끔 너울댄다.
이래서 楊口八景 중 사명산을 제1경으로 꼽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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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사명산에서 63년 전 6.25를 떠올리며 파로호를 굽어본다.
6·25전쟁 때 중공군 3개 사단이 섬멸, 수장된 곳이 저 파로호다.
파로호는 원래 화천호였다. 6.25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많이 잡은 호수’란 뜻으로 친히 ‘파로호(破虜湖)’란
이름을 내려 지금껏 ‘파로호’로 불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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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애초 계획했던 추곡약수 쪽(7.1km)을 접고 웅진리 선정사 쪽((4.7km)을 택했다.
일행 중 한 명이 탈진 증상을 보여 최단코스로 수정했다.
능선을 버리고 단코스를 택한 탓에 산비탈은 그만큼 까칠했다.
발끝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숲은 햇살이 파고들수 없을만큼 조밀하다.
서늘한 바람은 싱그런 숲향을 실어나른다.
울울창창한 숲속 어디선가 익숙한 새소리가 따라붙는다.
속칭 ‘홀딱벗고~’새다. 스님들은 ‘빡빡깎고~’로 들린다지만
귀 기울여 들을수록 영락없이 ‘홀딱벗고~’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붙더니 제풀에 지쳤나, 잠잠해졌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이번엔 물소리다.
땀범벅에 파김치 상태로 하산 시, 물소리는 그대로 천상화음이다.
어슴푸레 들리던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 걸음 또한 빨라진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숲길로 들어서니 비로소 물소리가 세차다.
드디어 물소리 맑은 이끼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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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오오, 배낭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계류로 뛰어든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갔다. 뼛속까지 시릴만큼 차디차다.
左 소양 右 파로호 품은 '양구 사명산'의 여름
계류 속에서 올려다 본 수목은 춤추듯 너울댔고.
계류 속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티없이 새파랬다.
찜통더위도 발붙일 수 없는, 이곳이 바로 ‘仙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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